모처럼만에 정상화된 국회에서 요즘 "말잔치"가 한창이다.

특히 예산안을 심의하기 위한 예결위 회의에서는 50명에 달하는 의원들에게
질의시간을 배정하는데에도 애를 먹을 정도로 의원들의 발언 욕구가 컸다.

의원들은 회의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충정"으로 이해할 만한 말들을
쏟아냈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근본대책을 수립하라" "재난관리 구조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혁하라"는 등의 발언이 그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 보면 의원들의 질의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재정적자가 심각한데도 불요불급한 추경안을 편성한 것은 당리당략의 산물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라고 주장했다.

채무 증가로 국가부도사태가 우려되고(한나라당 권오을 의원) 적자재정으로
거시경제 운용에 지장을 줄 수 있다(국민회의 정세균 의원)는 지적도 제기
됐다.

이같은 말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원들은 속내를 드러냈다.

의원들은 "지하철 9호선 착공을 서둘러라"(한나라당 이신범 의원) "농어민
상호금융 이자를 5년간 동결하라"(한나라당 권오을 의원) "근로소득세
경감률을 높여라"(국민회의 장영달 의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실현가능한 제안들이다.

많아야 10여 페이지 정도인 의원들의 질의서에서조차도 일관된 논리를 찾기
어렵다.

우국충정으로 포장된 말들이 결국 구호성이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의원들 스스로도 질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인한다.

한 여당 의원은 "선심성 예산을 줄여 국가 재정을 긴축운영해야 한다고
전제해놓고 각종 서민지원 대책비를 늘리라고 하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느냐"며 불평했다.

모순된 질문은 그렇다치더라도 의원들은 자신의 요구사항에 대한 정부측
답변을 들으려는 성의조차 갖지 않았다.

검찰의 야당 후원금 계좌추적 문제가 더 큰 관심이었다.

여야간의 논란으로 총리 답변이 중단됐고 9일 회의는 자동으로 유회됐다.

10일 회의는 속개됐지만 여전히 쟁점은 예산안과 거리가 먼 계좌추적
문제였다.

이로 인해 재정운용 방향을 제대로 세우지도,지역구 사업을 챙기지도 못하게
됐다.

국회는 6일부터 밤늦게까지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돌출변수가 많아 능률적인 국회가 되지 못하고 정쟁에
휩싸이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도 칭찬받기는 글렀다.

< 김남국 정치부 기자 n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