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아주대 교수 / 환경도시공학 >

부산은 지역경제의 "함정"이다.

지금 인구 5백만명을 바라보는 대도시로 인구밀집도는 서울보다 더 높다.

게다가 산악으로 둘러싸여서 도시확장을 위한 땅의 여유도 없다.

경부고속철도가 들어가는데 18km에 이르는 장대터널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도시는 거대화하는데 서비스 산업만 무성하다.

그것도 금융 정보통신 등 생산자서비스는 모두 서울에 빼앗기고 소비중심의
단순 서비스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컨테이너 처리량으로는 세계 5대 항만도시이지만 항만시설은 중앙정부
소유이다.

부산의 도시계획구역 밖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컨테이너를 처리하기 때문에 시내는 온종일 항만관련
화물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통체증과 도로파손으로 인한 손실만도 연간 수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항만기능이 물류산업으로 확대재생산되지 않아 부산경제에 대한
공헌도는 크지 않다.

도시발전은 원래 기반산업에서 출발한다.

기반산업이 고용을 창출하고 여기서 부수적으로 서비스산업으로 확산되면서
도시가 성장하는 것이다.

부산도 제조업으로 살려고 목재 신발공장 중심의 산업을 키웠다.

신발산업은 노동집약적이다.

도시에 맞기는 하나 첨단산업이라 할 수는 없다.

부산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신발연구소도 있다.

그러나 신발산업이 번창하던 사상공단은 지금 공해에 찌들어 부산의
애물단지가 됐다.

이 도시부적격 공장을 이전하려고 만든 것이 녹산공단이다.

녹산공단은 원래 부산시 외곽이었는데 부산시의 요구로 시내로 편입되었다.

신호공단에 입지한 부산의 삼성자동차공장은 태생적으로 부적격한 땅이다.

이 곳은 철새의 도래지로서 녹산공단을 조성하며 남겨놓았던 땅이다.

자연생태계의 세계적인 보고였다.

그러나 부산사람들은 철새보다는 자동차공장이 더 좋았을 것이다.

녹산공단이나 신호공단이나 새로 지으려는 신항만부지나 모두 갯벌지대로
지반이 약해 공장을 지으려면 물을 빼고 지반을 다져야 한다.

엄청나게 돈이 든다.

이 모두 부산이 짊어지고 있는 멍에다.

현재의 부산부두가 비좁아 가덕도 신항만계획을 세워 소위 동북아의 중심
항구를 겨냥하고 있으나 지형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사업추진이 시들해졌고, 민자사업자로 내정된 삼성도
자동차를 포기함에 따라 점차 매력을 잃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부산의 인구는 늘고 주택은 부족하여 양산과 정관에 신도시를
만들고 있다.

기존 도심과의 연계교통이 어려워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

부산에는 산으로 아파트가 기어오르고 있다.

땅이 없기 때문이다.

그린벨트가 풀린다고 하니 김해 일대에 신도시 구상이 무르익겠지만 워낙
덩치가 커서 그린벨트 해제는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요즘 PK정서니 YS정서니 하며 미묘한 정치바람이 분다.

정부는 정치권에 떼밀려 갑자기 신발공장 단지 만들고 신항만건설을
서두른다고 발표했다.

87년 선거 때는 계획안도 없이 명지.녹산개발을 위한 기공식부터 한 적도
있다.

지금도 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한국 제2의 도시가 이 모양이니 제3,제4의 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의 실상은
어떻겠는가.

선거 때마다 타당성 검증도 없이 밀어붙여 허허벌판 같은 공단이 곳곳에
수두룩하다.

도시기반이 2차 산업에서 차차 첨단 및 서비스 산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인데
우리는 아직 2차 산업을 놓고 아웅다웅이다.

대구는 위천공단을 놓고 사생결단의 자세이고, 삼성전자가 옮길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자 수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지방경제 살리기의 해법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부산은 대도시이다.

그러나 아직 산업구조면에서는 중소도시 수준이다.

오사카 로스앤젤레스 바르셀로나 등이 모두 비슷한 제2의 항구도시들인데
이들은 독자적으로 지역경제의 중심적 역할을 넘어 세계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부산은 동남해안공업벨트를 이룬 남부경제권의 중심도시로 좋은 배경을
갖고 있다.

대도시로서 창업인큐베이터 기능도 살려야겠지만 지역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생산자서비스 기능이 우선 육성돼야 한다.

행정조직도 바꿨으면 한다.

광역시와 도, 즉 부산과 경남은 당연히 한 울타리로 넣어 진정 광역적
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부산항만기능을 지방으로 이양하여 항만관련 물류산업을 부양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구 광주 대전 등 지방의 대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구호에만 그친 국토균형개발정책이 이들 지방 대도시의 경제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몰려 있는 중추기능을 나눠 가지려 해도 안테나를 서울에 두고
관가와 정치판을 기웃거려야 하는 기업풍토가 바로 국토균형개발을 막는
요인이기도 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