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로시 < 인디펜던트 스트래티지 사장 >

일본을 보면 해파리가 생각난다.

해파리는 바다의 조류를 따라 흘러다닌다.

그래서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파도가 잠잠해지면 해파리가 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은 이런 해파리의 속성을 닮았다.

최근 일본을 방문해 일본 대장성 관리들을 만났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본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세계 여론에 맞춰 일본이 잘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일본은 역동적인 경제활동이 쇠퇴하고 부채가 증가하면서 지난 수년간
혹독한 경기침체를 겪어왔다.

그런데도 엔화가치는 오르고 있다.

왜일까.

이는 부분적으로 미국경제가 하강국면에 접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일본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외환시장에 영향을 줘
그렇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경제는 회복되고 있는가.

세계는 일본이라는 "해파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1.4분기중 일본은 전년대비 7.6%라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같은 성장률은 일본정부가 쏟아부은 공적자금과 경기부양책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허상일 뿐이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최근 내놓은 40억달러를 포함, 일본정부는 90년대
들어 총 1조달러를 공적자금이란 이름으로 경제에 투입했다.

이 공적자금의 약발은 올 2.4분기에도 꽤 컸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 후엔 어떻게 될까.

오름세를 보이는 실업률, 가계 부의 감소등 암울한 지표들이 다시 일본경제
를 제로 성장의 나락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까.

이런 우려 때문에 일본정부는 3.4분기에도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은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일본정부는 부양책만으로는 경제를 살릴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일본경제의 명암을 좌우할 핵심은 바로 일본이 축적해놓은 거대한 저축액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일본의 재정적자는 GDP의 10%에 달한다.

만약 막대한 저축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일본정부는
그 돈을 재정적자를 메우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가계저축은 아직 일본에 머물러 있다.

이는 그동안 일본정부가 끊임없이 미국경제에 대한 버블경고를 내놨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들은 "버블"의 위험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뼈저린 경험을 갖고 있다.

시중 금융기관들은 일본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이들은 또 중앙은행에서 1.5%라는 저금리로 돈을 빌려 국채(1.75%)를 사서
되파는 방식으로 0.25%포인트의 금리차익을 챙기고 있다.

여기에는 리스크도 거의 없다.

일본 정부는 이런 식으로 저축금액을 국내에 묶어놓는데 성공했다.

여기에다 외국인들도 가시적인 일본경제의 회복세에 부화뇌동, 일본증시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엔화가치는 오르고 있다.

그러나 엔고는 결코 일본경제에 좋을 게 없다.

일본 관료들은 그동안 경기침체를 이유로 저금리를 주장해왔다.

저금리라야 금융기관들의 돈을 붙잡아 둘 수 있다.

금융기관들도 싫지않다.

금리차익으로 부실이라는 딱지를 떼고 탄탄한 재무상태를 다질 수 있어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절름발이" 금융기관들과 "방탕한"
정부가 과연 일본경제를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럴 것같지 않다.

"금욕주의자"인 토머스 아퀴나스가 미인을 앞에 두고 기도했던 것처럼 일본
관리들은 "신이 일본인들에게 자제력을 하사해주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관료들은 피라미드같은 일본 경제구조를 쓰러뜨릴 수도 있는 "금리인상"
이라는 극한 처방없이 그저 "세계화조류"가 일본기업들로 하여금 구조조정을
하도록 해주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물론 일본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같은 수준으론 어림없다.

더 혹독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대규모 감원과 함께 비수익사업은 과감히 매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 자산대비 2%대에 머무르고 있는 자본수익률을 2배가량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천재보다는 다수를 위하는 일본같은 "사회주의적 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는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일본 사회는 변해야 한다.

기업의 이사회부터 바뀌어야 한다.

충분한 보상과 인센티브로 기업인들의 창의력을 살려야 한다.

이런 변화가 오기까지는 아마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파도에 휩쓸려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해파리에 속아 일본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실망만 안고 돌아서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 정리=박수진 기자 parks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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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민간경제연구소인 "인디펜던트 스트레티지"의 데이비드
로시 사장겸 수석 글로벌 전략가의 타임지(8월9일자) 기고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