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특정 종교를 믿는 B씨와 결혼했다.

아내인 B씨는 일요일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예배당에 나가며 제사를
거부했다.

그래서 A씨는 아내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며 여러차례 폭행했다.

B씨는 이를 견디다 못해 가출했다.

A씨가 B씨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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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에는 서로 동거.부양.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부중 한명이 그 의무를 포기하고 배우자를 버린 경우를 "악의의 유기"라고
한다.

다음의 3가지 예를 살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1)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동거중이다.

남편은 아내의 생계를 위해 딸 명의로 집을 사주었다.

아내는 딸의 집에서 살게 했다.

이 경우에도 악의의 유기에 해당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다.

그러나 이 경우 남편이 첩을 두고 20년 이상 사는 것을 아내가 묵인했기
때문에 간통 등 부정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2) 불교를 믿는 남편의 어머니가 종교가 없는 아내를 데리고 절에 갔다.

아내가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면서 불교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남편은 집을 나와 입산해 스님이 됐으며 10년 이상 부부가 별거하게 됐다.

법원은 이 경우 남편이 악의의 유기를 한 것으로, 아내의 이혼청구를
인정했다.

3) 여자가 농촌으로 시집을 가서 결혼생활 20일만에 농사일이 힘들고 남편의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가출했다.

아내가 정신박약자인 아들의 양육을 소홀히 하고 춤바람으로 여러차례
가출했다가 돌아온 뒤 며칠 만에 가재도구를 챙겨 무단 가출했다.

이 경우에도 법원은 아내가 남편을 악의로 유기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집을 나가 별거하게 된 이유가 상대방에게
있는 경우에는 악의의 유기가 안된다.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아내가 가출했다면 이는 남자의 잘못으로 법원은
악의의 유기라고 주장하는 남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남편이 근거없이 아내의 부정한 관계를 의심해 욕설과 폭행을 하자 아내가
남편이 받을 외상대금을 가지고 가출했을 경우에는 가정파탄의 책임이 남편
에게 있다.

이 경우도 여자가 악의의 유기를 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남편의 버림을 받은 아내가 수년간 식모살이로 생계를 유지하다 다른 남자와
재혼했고 남편은 처가 재혼한 2년 뒤에 재혼했는데 아내와 재혼한 남자는
사망했다.

이 경우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자가 남편이어서 남편은 아내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이러한 법원의 경향은 혼인관계의 파탄원인을 제공한 자는 배우자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더라도 스스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즉 부당하게 상대방을 괴롭혀 내쫓고 이혼하는 일명 "축출이혼"의 폐해를
막으려는 데서 비롯됐다.

문제가 된 위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여자가 가출한 이유가 신앙을 이유로 한 남편의 폭행 때문이라면
남편을 악의로 유기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포기를 요구한 남편에게 혼인파탄의 책임이 있으며 남편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 김준성 변호사 www.lawguide.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