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유난히도 선전물이 많다.

불조심, 차조심, 차선엄수, 쓰레기 안버리기, 환경보전 행락질서 등 아주
기본적인 계도물에서 "무슨무슨 강조기간"이나 "무슨무슨 운동" 등이 곳곳에
걸려 있다.

어디 눈을 들어 조용히 풍경을 음미하기 어려울 정도다.

주로 현수막이나 아치처럼 작지도 않다.

"우리는 문화국민입니다"라는 자존심 구호를 넣은 고속도로 화장실의 스티커
를 비롯해 도심 홍보탑까지 가세하고 있다.

선전물 천국의 시각공해가 이만저만 심한 것이 아니다.

간판은 또 얼마나 어지러운가.

울긋불긋 한 개도 아니고 두 세개씩 붙인다.

그것도 모자라 웬 빨간색이 그렇게도 많은지.어떤 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흡사 중국의 거리에 서 있는 느낌마저 든다.

문화국민(?)들이 선택한 색상 치고는 비문화적이다.

"문화국민"이란 구호를 내걸고 야만스런 선전을 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한때는 빨간색을 선전물의 30%이내로 규제하더니 언제부터인가 흐지부지
됐다.

공산당 때문이 아니라 도시미관 관리를 위해 빨간색을 제한했더라면 이토록
시각환경 공해가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글자는 외래어 투성이다.

재작년에 아들 녀석의 방학 숙제를 도와 주느라고 집근처 간판의 외래어
사용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서울 송파 사거리에서 잠실까지 길가에 붙어있는 간판들 가운데 놀랍게도
48%이상이 외래어이거나 그것을 섞어쓰고 있었다.

변두리가 이 정도라면 명동은 70%를 넘을 것 같다.

세종문화회관 이름에 일제 잔재인 "회관"이 붙어있다고 "센터"로 바꾼다는
판국이니 세종대왕이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환경은 자연환경만 중요한 게 아니다.

후손들에게 떳떳함을 전해주는 정신환경, 눈을 바로 뜨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시각환경운동과 삼위일체가 이뤄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일부터 줄여 나가는
시각환경운동이다.

정부는 계몽성 구호판부터 줄이고 꼭 필요한 것은 시각환경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시행하도록 권장하는 일, 시위할 때 쓰는 시뻘건 머리띠도 나름의
개성어린 방식으로 바꿔보면서 문화적 멋을 풍길 수 있는 데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간판은 아주 작은 매체에 불과하지만 공연히 불쾌감을 주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단어 하나에 풋풋한 사랑을 느끼고 다시 바라보고 싶은 색깔이 주변환경을
감싸게 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환경운동은 정신과 시각과 자연을 조화시키는 방향에서도
보듬어졌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