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와 국민회의 자민련이 16일 국회에서 개최한 당정회의의 분위기는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강봉균 재경부 장관이 인사말을 통해 금융종합과세 실시 시기와 세율 인하
방향 등 세제 개편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자 당에서 발끈했기 때문이다.

이상수 국민회의 제1정책조정위원장은 "아직 당정협의에서 확정되지도 않은
내용을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밝혀도 되느냐"며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강 장관은 "포괄적인 내용만 설명하는 것이고 비공개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게 많다"고 해명했지만 임채정 정책위의장은 곧바로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공개석상에서 이런 사소한 일로 시비가 생긴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날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세제개편 방안을 상세히 보도했다.

당초 정부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연 뒤 재경부장관이 이 내용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당의 강력한 요청으로 발표 창구를 당으로 바꿨다.

그러나 언론에 발표내용이 미리 보도됨에 따라 정부와 여당관게자간 갈등이
생긴 것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도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 관계자들이 정부가 "언론 플레이"를 했다며 불만을 표시하자 강 장관은
"미리 유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에 당 관계자 중 한 명은 조간신문을 급히 구해와 강 장관에게 들이대며
"이렇게 상세히 보도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논란을 벌이느라 회의 시간의 상당 부분을 허비했다.

심지어 재경부 세제실장이 보고하는 도중에도 강 장관은 "이 대목은 오늘
보도되지 않았다"는 부연 설명까지 곁들여야 했다.

중산층과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고 조세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세제개편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발표 주체가 돼 언론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날 회의의 주된 의제가 된 셈이다.

참석자들은 당정회의에서 이같은 논란이 있었다는 게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한 듯 자세한 회의 내용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그러나 경축사의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당정회의에서 조차 "구태"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 김남국 정치부 기자 n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