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지금 초고속화 초미세화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분자
공학"에 관심을 가져야할 때입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김동호 박사는 "찰나적 현상"에서 진리를 찾고 있다.

그가 말하는 찰나적 순간은 1초가 아니다.

수조분의 1초, 수천조분의 1초다.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나라의 분광학 연구수준을 10여년만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분야에서 순간 포착이 가능한 초고속 레이저를 이용해 반도체소자,
고분자 소자, 풀러렌, 분자전자소자 등 첨단 신소재의 새로운 성질을 밝혀
냈다.

특히 지난 92년에는 풀러렌의 물리학적 특성을 처음으로 밝혀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풀러렌은 탄소원자 60개가 모여 이루어진 축구공 모양의 거대한 분자.

지난 85년 처음으로 발견된 이 분자는 축전지 초전도체 기억소자 광학소자
등에 이용될 수 있는 미래형 신소재로 각광받는 물질이다.

김 박사는 풀러렌 분자가 레이저를 흡수해 들뜬 상태가 된 뒤 불과
1.2나노초(1나노초는 10억분의 1초)만에 에너지를 방출하고 빠르게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또 이때 빛이 방출된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 빛은 우주의 성간물질과 비슷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풀러렌은 안정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전혀 빛을 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김박사의 연구결과는 풀러렌이 성간물질이라는 것을 입증, 우주의
신비를 파악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 박사의 연구결과를 인용한 논문만도 1백여편에 달한다.

김 박사가 아무도 인지할 수 없는 이 짧은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극초단 펄스레이저 덕택이었다.

이 레이저를 이용해 김 박사가 만든 장비는 10펨토초(1펨토초는 1천조분의
초)에 일어나는 현상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을 돈다는 빛이 3만5천만분의 1mm를 움직이는
것을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극초단 펄스레이저를 이용하면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은 물론
고속통신분야에서 요구되는 초고속 소자도 개발할 수 있다는게 김 박사의
설명이다.

김 박사는 앞으로 기존의 반도체소자를 분자로 대체하는 분자전자소자의
성능을 분석하는데 전념할 생각이다.

분자전자소자의 성질이 규명돼면 고집적화 초고속화 고효율화 등이 가능
하다.

김 박사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레이저분광학
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86년이후 표준과학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해오면서 표준논문상 대상,
국무총리표창 등을 수상했다.

지난 7월에는 과학기술부가 선정하는 "이달의 과학자상" 수상자로 뽑혔다.

< 김태완 기자 tw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