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식 < 서울대 교수 / 경제학 >

지난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대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이들 기업의
부채비율을 올해말까지 2백% 이내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올해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무엇보다도 자산재평가나 유상증자에 의한 통계상의 변화에
기인한다.

빚을 줄이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실질적으로 부채가 축소되기 위해서는 외형 위주의 성장을 지양하고 수익성
위주의 경영으로 기업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부채축소는 구체적으로 과잉인력을 해고하거나 과다투자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선 과잉인력문제와 관련해서 살펴보자.

대규모 해고사태가 기업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체계적으로 벌어져
왔었다.

그리고 동아시아적 성장모델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평생직장제도가
기업경영의 큰 걸림돌로 인식되면서 포기되었다.

그러나 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평생직장제도는 차입경영과 함께 지금까지의
고도성장과 완전고용의 유지에 나름대로 역할을 한 측면도 있다.

사실 외환위기전 한국 기업은 많은 과잉인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해 왔었다.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8~9%대까지 오른
실업률이 그 이전에는 2~3%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기업의 수익극대화란 애초부터 어려웠다.

특히 사회보장제도가 잘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내에서라도
잉여노동력을 흡수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수익성제고는 더욱 더
어려웠다.

문어발경영이든 외형을 확대하든 무엇인가 하는 것이 해고보다는 쉬운
선택이었다.

차입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특히 경기가 나쁘게 되면 부채구조는 순식간에
악화되었다.

이런 점에서 차입경영은 고용안정성에 대한 반대급부의 결과로 필요악이었다
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평생직장이라는 고용안정제도가 탄력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경직화되어 기업의 생존자체를 위협하게 된 데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임금과 고용경직성이 급속히 경직화되기 시작한 1987년이
오히려 위기의 시작이라고도 보인다.

세계화라는 추세속에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었으나 우리경제는 불행히도 이와는 정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그 결과는 외환위기 이후 반동적으로 대규모 해고로 이어졌다.

대량해고가 가능해졌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우리 경제가 일부 유럽국가
에서 보듯이 저성장과 대량실업이라는 최악의 상태로 빠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과다투자의 문제는 외환위기의 원인과 관련해 이미 충분히 강조되어
왔었고 빅딜이란 이름하에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과다투자는 빅딜에 의해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구조를 살펴보면 재벌들이 비재벌
기업들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고 금융기관을 소유한 기업일수록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재벌의 금융지배를 억제하는 것이 과다투자 및 부채를 축소하는 데도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질적인 부채율의 축소란 관점에서 보면 가장 성공적으로
진행된 구조조정은 고용조정이라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재벌의 과다투자조정은 지지부진하다.

일부 국내외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년반동안 우리 경제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고용조정이 가능해졌다는 것 그 자체로 우리 경제는 이미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일부 기업들이 올해 큰 이익을 낼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대량해고에 의해
가능해진 것 같다.

주가가 오른 것도 이에 의해 시발점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고는 투자조정 등 다른 모든 수단이 실패했을 경우 사용되어야
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고용안정은 부채축소와 수익성 경영이란 이름하에서도 가능한 한 지켜져야
할 가치이다.

기업의 제일목적이 생존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기업의 생존은 고용기회의 제공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찾는다.

해고할 수 있으나 해고할 필요성이 없는 경우가 최선이 아닐까.

그렇지 못하다면 해고를 피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mwoosik@gias.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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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프랑스 파리대학 경제학박사
<>KDI 연구위원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