콴치훙 < 일본 노무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 >

지난 97년 여름 태국을 시발점으로 발생한 아시아 금융위기는 94년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와 95년 중반이후 일본 엔화의 급격한 약세에서 싹이 텄다고
할 수 있다.

엔화가치는 지난 95년 봄 달러당 80엔까지 치솟았다가 급격한 하락세로
반전, 아시아 외환위기 직전에는 달러당 1백15엔선까지 떨어졌다.

당시의 엔화약세는 일본경제의 버블붕괴, 금융부문의 대규모 부실채권,
디플레 압력등에 따른 현상이었다.

엔화약세는 곧바로 아시아국가의 수출에 타격을 입혀 경상적자를 가중시켰다

태국의 경우 바트화가치는 97년 초반까지 2년동안 달러화에 대해서는 4%가량
떨어졌다.

그러나 주요국의 교역량을 가중평균해 산출하는 실질실효환율은 오히려
15%나 평가절상됐다.

엔화가치 하락으로 엔화에 대한 바트화가치가 무려 35%나 뛰었기 때문이다.

결국 태국의 수출증가율은 95년 20%에서 96년에는 거의 0%로 곤두박질쳤다.

경상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7.9%까지 늘어났다.

달러화의 비중이 컸던 태국의 바스켓 환율제도가 엔화가치하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탓이다.

아시아 각국의 사정도 비슷했다.

자국통화를 달러화에 지나치게 연동시켰던 나라들은 엔화 약세로 수출
급감을 겪었고 이것이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배경이 됐다.

엔화 약세는 몇가지 경로를 통해 아시아의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첫째, 일본에서 아시아로의 자본이동을 위축시킨다.

아시아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본의 생산비용이 떨어져 일본기업의
해외진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은행들은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해외채권가치가 낮아져 해외
대출을 꺼리게 된다.

둘째, 일본 수출상품의 가격이 낮아져 국제시장에서 일본제품과 경쟁하는
아시아국가의 수출에 타격을 입히게 된다.

96년이래 엔화가치 하락이후 일본의 수출은 늘어난 반면 아시아 국가의
수출은 줄어들었다.

엔화 약세는 특히 일본 제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등에 치명적이다.

인도네시아처럼 일본 제품과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지난 94년1월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나라는
수출경쟁품목이 많았던 태국등 아세안국가들이었다.

아세안국가들은 중국과 수출시장에서뿐 아니라 외국인투자유치 경쟁도
벌여야 했다.

또 중국은 92년에서 97년 사이에 노동생산성이 20%나 급증, 아시아 국가를
크게 앞질렀다.

94년1월의 위안화 평가절하는 중국의 수출증가를 촉발했고 이는 반대로
아시아 국가의 수출둔화를 초래했다.

그러나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로 인한 아시아국가의 타격은 일본 엔화
약세에 비해 악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엔화와 위안화의 가치하락으로 싹트기 시작한 아시아 경제위기는 일본과
중국에도 적잖은 악영향을 미쳤다.

먼저 아시아 지역에 투자했던 일본 기업들이 타격을 입었다.

아시아 각국의 급격한 통화가치 하락으로 막대한 자본손실을 입었다.

게다가 아시아 시장수요감소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됐다.

투자와 무역 은행대출등 아시아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일본은 아시아
외환위기 영향으로 엔화가 달러당 1백47엔까지 급락하는등 통화가치가
불안정해졌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엔화가치 하락을 통한 수출확대로 경기불황에서
탈출하려는 것은 오히려 일본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이는 아시아 국가의 경기회복을 더디게 할뿐 아니라 미국 EU등과의 무역
마찰을 심화시킬 것이다.

또 일본내 신용경색을 더욱 자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히려 엔고가 구조개혁뿐 아니라 일본으로의 자금유입을
가속화시켜 경제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아시아 국가들은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환율을 엔화에 연동시킬 필요가
있다.

엔-달러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아시아 지역에서 엔화 사용을 늘려 이른바 "엔블록"을 만들
필요가 있다.

아시아지역의 통화가치 안정은 결국 아시아 각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들어 디플레 압력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위안화를
평가절하하지 않고 있다.

만약 중국이 평가절하에 나설 경우 아시아 각국의 평가절하 도미노 사태가
불가피해 이 지역의 통화불안이 재차 부각될 수 있다.

이 경우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의 실익을 얻지도 못할 것이다.

< 정리=박영태 기자 py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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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3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열린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
콴치훙 박사의 초청강연 내용이다.

콴치훙 박사는 아시아지역의 통화위기 자본흐름 엔블록에 관한 다수의
저술과 연구로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노무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및 대장성 산하 외환거래위원회 위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