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시 백화점 방문 ]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기차로 갔다.

3시간30분 걸렸다.

비행기를 타는 번거로움이나 소요시간을 따지면 별 차이가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오찬 초대를 한 어빙 트러스트(Irving Trust) 신탁으로 갔다.

바로 세계 금융의 중심 맨해튼 월스트리트 59층 중역 식당으로 안내됐다.

벽 전체가 유리로 돼있어 시야가 눈부실 정도로 확 트였다.

월스트리트의 마천루와 맨해튼의 광활한 바다가 필자를 압도했다.

인간의 왜소함을 느꼈다.

57년 12월 하순 이곳에서 영국으로 떠나던 추억이 순간 머리를 스쳐간다.

호화 여객선 7만여톤급 퀸메리호의 가장 싼 티켓을 사서 영국 유학길에 오른
것이 바로 이 근방 부두였기 때문이다.

이원순 단장이 어빙 트러스트의 오랜 고객이어서 이날 점심 초대가
이루어졌다.

미국측에서는 30여명이 참석했다.

절반 가량이 각종 금융회사 중역들이다.

거만에 가까운 자신감을 풍겼다.

식사후 필자는 경제사절단이 미국을 찾은 목적을 약 15분가량 설명했다.

수출시장개척 투자유치 기술도입 등 세가지가 우리의 관심사라고 했다.

투자유치를 설명할 때는 워싱턴에서 들은 한국진출 Gulf 회사 부장의 경험담
을 소개하기도 했다.

즉 한국 근로자의 노동질,기술 습득능력 등을 상세히 언급했다.

이만하면 미국 기업인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점심 회합이 끝나 떠나려고 하는데 매뉴팩쳐러, 하노바 트라스드 베네트
전무가 잠깐 만나자고 했다.

후에 알아보니 이분은 미국 금융계에서 소문난 아시아 전문가였다.

이 신탁회사는 2차 대전 전 중국에 수십억 달러의 금융을 지원했다가 장개석
정부의 본토철수로 큰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베네트 전무는 앉자마자 조용한 어조로 타이르듯 이렇게 말한다.

"아까 점심시간에 당신의 방미목적에 대한 설명을 잘 들었소. 당신이 말한
대로 한국은 그렇게 해야 할 것이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약간 멈췄다.

"세가지 목적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한꺼번에 세가지를 이룩할 수는
없을 것이오. 우선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시오. 물건을 사고 팔고 하다 보면
서로 잘 알게 되어 가까워지고 신뢰가 쌓이기 마련이오. 거래도 늘고 시간도
지나면 서로를 믿게 되는 것이오. 이때 투자 이야기를 꺼낼 수 있지 않겠소.
먼저 신용을 쌓아야 합니다. 나중에라도 미국 기업인과 접촉할 때 이점을
유념해 주시면 좋겠소..."

아차 싶었다.

"또 경험 부족에서 오는 실수를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지금도 베네트 전무의 다음과 같은 조언을 기억한다.

"일단 투자한 돈은 좀체 회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투자 대상자를
완전히 믿지 않으면 투자결심을 할 수 없지요. 남녀간 결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심하게 내일 방문처인 메이시(MACY''S) 백화점 구매 책임자
에게 내 방문에 대해 잘 부탁해 놓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튿날 메이시 백화점 구매담당 부장을 만났다.

베네트 전무의 소개 덕분인지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줬다.

그는 일본도 50년대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똑같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와 메이시 백화점이 어떻게 일본 수출업자들에 도움을 줬는지
차근차근 알려 줬다.

우리는 준비한 샘플을 보여 줬다.

유기촛대 담뱃대 한국인형 등이다.

미국군인들이 귀국할 때 사가던 기념품들이다.

촛대를 내 눈앞에 세워 놓으면서 구매부장은 "이것 보세요. 촛대의 모서리가
이렇게 거칠어서야 되겠어요. 아이들이 잘못하면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들이 사겠어요. 50년대 초 일본제품은 조잡한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일일이 지적했지요. 그리고 샘플보다 나은 제품을 보내도록 노력
했지요. 또 선적기일도 엄수해야 합니다. 거래에 관계되는 모든 행동이
신용과 직결됩니다. 이렇게 해서 신용을 쌓아야 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사람도 있구나..."

절로 탄복이 나왔다.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