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협력 미국측 창구 물색 ]

경제사절단은 메이시 백화점 구매담당자 권유대로 4층 일본상품전시장을
돌아 본다.

전시된 품목의 질은 한국보다 한단계 높았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포장이었다.

포장지의 색깔 디자인 재료 등 우리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막말로 한국 포장은 첫눈에 촌티가 난다.

물론 이것도 메이시측의 말로는 죄다 자기들 지도 덕분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상품 카다로그만 해도 그렇다.

디자인뿐 아니라 색 인쇄도 말이 아니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사절단" 같은 종합 대형 사절단도 필요하지만, 앞으로는 상품 견본을
들고 고객을 찾아 다니는 "세일즈 미션(Sales Mission)"도 자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에 처음 기독교를 전도(1549)한 "성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유품
전시회가 5층에서 열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지금도 눈에 선한데, 구라파 아프리카 인도 일본에 이르는 큰 지도가 벽에
걸려 있었다.

바로 옆에 "성자, 하비에르"가 입고 다녔던 예복이 걸려 있다.

물론 색깔은 몹시 바랬고 손대면 푸석 부스러질 듯 했다.

성경책 편지 신발 등 몇 안되는 초라한(?) 유품들이다.

나는 벽에 걸린 큰 지도와 성자 예복 앞에 섰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의 작은 마을에서부터 로마 아프리카남단 인도
말레이시아 일본까지 "하비에르"의 발자취가 그려져 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멀고 먼 미지의 세계로 온갖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
가게 했을까...

정신이 아찔했다.

"하비에르"를 전도사로 동양에 파견한 것은 "예수회(1537년 창설)"였다.

하비에르의 평생 벗으로 예수회를 창설한 "로욜라(1491~1556)"는 예수회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어느 지역이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곳이면 기꺼이 갈 준비가 돼 있는 사도들 모임이다"

가톨릭 법왕청의 권위와 부패에 반기를 든 루터(1438-1546)의 종교개혁은
천년이상 통일된 기독교를 신.구로 양분시켰다.

이 신교 개혁에 맞서 세계포교의 선구자로 나선 것이 바로 예수회다.

(서강대도 이 예수회에서 설립했다)

15, 16세기의 문예부흥, 종교개혁,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을 통해
서구는 세계의 패자가 된다.

당시의 시대정신은 모험 용기 개척이었다.

또 처음 세계 일주(1519-1522)를 이룩한 마젤란, 전도사 하비에르, 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모험 기업가들, 모두 시대 흐름에 뛰어든 자들이다.

이 개척 모험정신을 우리 경제인,아니 한국 국민전체에게 접목시킬 수
없을까...

우리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빌 수 없을까...

그날이 올 때 한국경제는 세계를 웅비하는 번영을 이룩할 것이다.

이를 촉진할 여건 마련, 길잡이가 돼야겠다고 나 자신의 할일을 그린다.

그 이튿날 시카고와 디트로이트 지역을 시찰한다.

시카고에서는 교포들을 초청했다.

SK 최종현 회장(작고), 효성의 조석래 회장 등이 당시 시카고대 대학원생들
과 활발히 의견 교환하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방미의 큰 목적인 민간협력의 미국측 창구를 아직 찾지 못했다.

워싱턴 뉴욕 시카고를 방문하면서 지방 상공회의소 상무성 지방 분소까지
탐문했으나 찾지 못했다.

영국의 CBI나 일본의 경단련 같은 국가적 경제단체는 아예 없는 듯 하다.

겨우 찾은 것이 "전미제조업자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s)"
였다.

이름은 근사했지만 알맹이는 미국자동차공업협회 전기공업협회 등 각
산별조직 등에 분산돼 있었다.

할 수 없이 연구기관 로비 조직까지 몇 군데 찾았다.

"헤리티지재단" "브루킹스 연구소" 등과도 접촉했다.

지금도 이들과 전경련은 직.간접 연결을 갖고 있다.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