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옛가옥은 지역별로 구조가 다르다.

북부형은 마루 없이 방을 이어붙인 전(田)자형, 중부형은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마루를 놓고 주방을 꺽어 배치한 ㄱ자내지 ㄷ자형, 남부형은 주방과
방을 일렬로 설계하고 대청마루에 더해 툇마루를 길게 깐 일(一)자형이
중심을 이룬다.

이탈리아의 해변 산자락마을 포시타노는 지중해의 햇살과 바람을 가득 받을
수 있도록 창을 크게 낸 하얀색 일(一)자형 집들로 가득차 있다.

건축이란 이처럼 기후와 생활환경 지역민들의 습성을 대변한다.

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1차 세계대전 후 그로피우스를 비롯한 일련의 건축가들이 단순하고 기능적인
집합주택의 필요성을 주창한 것은 산업혁명 이래 심화된 주거문제가 전쟁으로
인해 더욱 악화됐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현대건축이 혼돈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우리 근대건축은 일제에 의해 도입됨으로써 전통건축의 맥을 잇지 못한채
정체성을 상실했다.

광복후에도 한동안 혼란을 거듭했고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사상 유례없는
건설호황을 맞았으되 우리 자연과 풍토에 맞는 양식을 탄생시키지 못한채
국적불명의 건축물만 양산했다.

건축의해를 맞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건축 1백년전"
은 이런 격변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1930년대의 거리모형과 1백년동안 이땅에 지어진 대표적 건물사진 등 전시작
은 뒤돌아볼 틈 없이 허덕거리며 달려온 우리 삶을 그대로 드러낸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에서 생활할 권리는 의식주와 교육받고 일할
권리에 이은 기본권이다.

기능과 효율만을 강조한 회색콘크리트 직육면체는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름 아래 주위를 고려하지 않은채 지어지는 "이상한 돌출건물"이 우리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건물만 있고 후대에 물려줄 건축이 없는 데는 건축가의 책임이 크려니와
집은 비바람만 피하면 된다고 여긴 수용자의 책임 또한 무시할수 없다.

이번 전시회가 건축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제고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