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미국 경제의 모습을 뒤바꾸고 있다.

기존 대기업들이 인터넷으로 무장한 신흥업체들에 밀려나는 등 산업계의
판도가 송두리째 변모하고 있다.

이른바 사이버 자본주의가 기업들에 안겨준 가장 큰 변화는 ''2등은 없다''는
점이다.

인터넷 발상지인 미국의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물결을
시리즈로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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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등 넘보는 ''2등 전략'' 무용지물 ]

미국 서부 최대의 인구 밀집 지역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이곳의 자치 정부가 조달하는 물자와 서비스는 미국내 1천여개 카운티
정부중 최대 규모다.

작년의 경우 각종 사무 비품에서부터 음식료품에 이르기까지 6억5천만달러
어치를 구입했다.

거래업체는 2만5천여개사.

규모가 방대하다보니 조달 행정 곳곳에서 누수가 심했다.

정확한 재고 파악부터가 쉽지 않았다.

수천자루의 필기 도구가 창고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도 매년 각 부서들이
필기 도구를 추가 신청하면 조달부서는 새로 구입해서 나눠 주곤 했다.

그러나 올들어 조달 업무를 전자 상거래 방식으로 전환하면서부터 이 모든
문제는 옛일이 돼버렸다.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그때그때 컴퓨터 온라인을 통해 주문하고 대금도
결제하게 되면서 재고 관리가 불필요해졌다.

카운티측은 5년내 중앙 창고를 폐쇄키로 했다.

덕분에 3천8백만달러의 예산을 가뿐히 절감하게 됐다.

뿐만 아니다.

조달 품목별로 최고 5%까지의 가격 인하 효과까지 가세했다.

인터넷 거래를 통해 공급업체들간 경쟁을 유도한 결과다.

이로 인한 비용 절감 규모도 수백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내 각급 정부들이 인터넷 혁명에 힘입어 관료주의적 낭비를 탈피한
예는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펜실베이니아 주정부는 지난 5월 난방용 연료에 대한 입찰을 인터넷 방식
으로 전환 실시했다.

그러자 과거의 서류 입찰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입찰에 참가한 업체들의 응찰가격이 컴퓨터 온라인을 통해 시시각각 공개된
것이다.

참가 업체들은 기를 쓰고 가격을 낮춰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주정부는 예년에 비해 1백만달러 가까운 예산을 간단히 절약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 상거래는 이처럼 관료주의의 본산인 관공서들까지
시장 경제 마인드로 재무장시키고 있다.

미국 내에서 온라인을 통해 거래되는 물자와 서비스의 규모는 올해
1백70억달러, 3년 뒤인 2002년에는 3천2백70억달러로 불어날 것이라는게
인터넷 연구기관인 포레스터 리서치사의 전망이다.

최근 텍사스대 전자상거래 연구소는 이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미국의 인터넷 비즈니스는 지난 95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평균 1백74.5%씩
성장했으며 현재 규모는 3천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통신이나 자동차산업과 맞먹는 규모라는 얘기다.

인터넷 거래를 통해 관공서와 일반 기업들이 절약하는 거래 비용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추정 규모는 전문가들마다 천차만별이다.

뉴욕시 교외 호프스트라 대학의 이근석 교수(경영학)는 가장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간 수백억달러씩은 절감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실물 경제 곳곳에서 가공할만한 파급 효과를 내기 시작한 인터넷
상거래는 기업들 모두의 새로운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서적 유통의 아마존, 인터넷 경매의 이베이, 사이버 증권 거래의 찰스
슈왑 등을 배출한 유통 금융업종에서부터 시작된 온라인 상거래 혁명의
물결은 언론 레저 통신 의약 등 주변 산업으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 에너지 화학 등 재래 산업 들도 멀지 않아 인터넷 비즈니스의
물결을 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터넷을 항해하지 않는 사람이나 기업이 있다면 가장 중대한 리스크를
자초하는 꼴(로렌스 보시디 얼라이드 시그널사 회장)이라는 지적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터넷 상거래의 출현이 기업들에 안긴 최대의 리스크는 1등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됐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업종에서 위험하게 치고 나가기 보다 경쟁업체가 하는
것을 보아가며 뒤따라 가는 안전한 2위 전략이 통했다.

그러나 인터넷 무대에서는 다르다.

해당 분야 최초업체로서 네티즌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최초 어드밴티지
(first mover advantage)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서적 유통업계에서 아마존에 뒤통수를 맞은 반즈 앤드 노블사가 아마존에
못지 않은 웹 비즈니스를 구축하고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인 예다.

기존의 시장 경제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사이버 혁명은 각 기업들을
사활을 건 무한 경쟁의 무대로 내몰고 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