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 사람들은 어디갔어!"

7일 오후1시를 훨씬 넘긴 은행연합회 국제회의실.

이날 오전10시부터 시작된 대우 채권단회의는 예정시간을 훨씬 넘기고도
끝날 줄 몰랐다.

회의장 주변에는 이날 상정된 대우 보증사채 이자지급문제등의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투자신탁회사 사람들을 찾느라 고성이 오갔다.

대우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은 투신사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며 설득작업을
벌였다.

기업구조조정위 관계자들도 초조감을 드러낸채 이곳저곳으로 분주히
움직였다.

회의장에 참석한 채권단 관계자들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자리를 뜨지
못한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회의장밖에는 마침 같은 장소에서 열린 증권강좌에 참석한 사람들이 회의장
풍경이 이상하다는듯 구경하고 있었다.

"세계경영"을 표방하며 전세계를 누볐던 대우그룹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모인 워크아웃 채권단회의는 침몰하는 거함을 연상케했다.

배에서 먼저 빠져나오려는 사람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사람들의 이전투구가
계속됐다.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은 지난4일 열린 제2차 채권단회의에서 부결처리됐던
안건을 아무런 수정없이 그대로 들고나왔고 투신사는 반대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오늘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더라도 내일 채권단회의에 같은 안건을
올리겠다. 쓸데없이 반대하지 말고 오늘 찬성표를 찍어라"는 협박성 설득에
못이겨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채권단회의는 결국 주최측 기대대로 원안을 모두 통과시켰다.

1차 투표에서 부결될 것으로 확실해지자 개표를 중단, 채권금융기관들을
설득한 결과였다.

"원안이 통과될 때까지 투표를 실시한다"는 엄포와 "반대의사를 밝힌 채권
금융기관들의 뜻을 수용할테니 걱정말라"는 회유가 동원됐다.

이날 회의로 대우 12개 계열사 워크아웃 협약은 최종 확정됐다.

1백개 채권금융기관이 한자리에 모여 60조원이 넘는 대기업그룹의 워크아웃
방안에 합의했다는 사실은 보통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만은 않았다.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될텐데 바쁜 사람들을 불러다놓고 회의를 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90%이상 찬성을 받아냈다"는 말이 "90%이상 항복문서를 받아냈다"는 것과
별로 다를게 없는 것 같았다.

< 현승윤 경제부 기자 hyuns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