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재 대표 이력 ]

<> 58년 전남 영암생
<> 히로시마 수도대
<> 서울 세종경영대학원 수료
<> 한.일문화교류센터 대표
<> 계간지 ''친구'' 발행인
<> 저서 ''일본이 있는지 없는 지 가봐야 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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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더라도 한.일전만큼은 서로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묘한" 관계.

한국과 일본은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다.

강성재 한.일 문화교류센터 대표는 "21세기형 한.일관계"를 꿈꾸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양국간 문화교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고 있다.

"당장 내달부터 2단계 일본문화 개방이 시작됩니다. 이같은 문화교류는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강 대표는 정부차원보다 민간차원에서의 교류가 보다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지난 95년 일본 히로시마에 자비를 털어 일.한문화센터를 세운 것도 이런
믿음에서였다.

그로부터 만 4년.

강 대표는 지난달 중순 서울에 한.일문화교류센터의간판을 올렸다.

서소문동 신아빌딩(전화 757-6786)에 자리잡은 한.일문화교류센터는 강
대표 "평생의 꿈"이 녹아있는 곳이다.

내달엔 또 민간 최초의 일본관련 전문 도서관도 들어선다.

강 대표와 일본과의 끈은 1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른살의 늦은 나이에 일본으로 "늦깍이 유학"을 갔던 게 첫 단추가 됐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그렇게 무지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유학생 강성재씨는 우선 학생신분으로 가능한 일부터 하기로 했다.

지역신문 독자란에 "한.일간의 문화비교"나 "군 위안부 문제" 등 미묘한
이슈를 정기적으로 투고했다.

그의 글은 고정독자가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문화교류사업을 필생의 사업으로 정한 결정적 계기는 우연하게 찾아 왔다.

유학생시절 만난 연인 다케노부 사와꼬씨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양가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던 것.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백년가약을 맺은 이후 "한.일간의 벽을 낮추는 데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강 대표의 꿈이 실현되기까지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엔 뜻이 맞는 일본인 친구 25명으로부터 각각 1만엔씩 갹출해 회지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엔 사업으로 번 돈을 모두 "문화교류" 사업에 투자했다.

서울에 있는 한.일 문화교류센터에선 일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취급한다.

회원을 대상으로 일본어 강좌를 개설하고 있으며 일본의 요리 풍습 놀이문화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씌여진 계간지 "친구"의 발행도 주요 업무다.

현재 회원수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 모두 2천5백여명.

강 대표는 1년안에 회원수를 2만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본격적인 일본관련 정보센터로 만들겠다"는 게 강 대표의 포부.

"21세기가 눈앞인데 양국민은 서로를 오해하면서 소모적 감정싸움만 하고
있다"는 강 대표는 "이젠 서로를 객관적으로 볼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부인 다케노부씨와의 사이에 난 태규 태혁 두아들이 한.일교류의 "살아있는
결실"이라며 환하게 웃는 강 대표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친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