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저널] '지적 사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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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주재했던 외신기자의 경험담이다.
하루는 한국신문에 난 기사를 인용 보도했더니 그때까지 잠잠하던 한국신문
들이 이를 크게 받아쓰더라는 것이다.
더 이상한 것은 이를 처음 다루었던 한국신문조차도 스스로의 "원조"
기사보다 더 크게 키우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추가로 취재한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 이 외신기자의 고백이다.
미국 굴지의 컨설팅회사에서 꽤나 인정을 받고 있는 한국인 컨설턴트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관해 경험도 쌓게 할 겸 미국인 부하직원을 데리고 갔다.
안내인의 소개로 만난 최고경영자(CEO)는 정작 상대해야 할 이 한국인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미국인만
상대하더라는 것이다.
CEO의 어설픈 영어 과시욕만 확인하고 왔다는 게 이 한국인의 실소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같은 내용이라도 코 큰 사람들이 얘기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다가도 한 솥 밥먹고 사는 자기 집안 사람의 얘기에는
코방귀를 뀌는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무리 잘 알려진 외국명문대 출신이더라도 한국인인 경우, 그 분석이나
전망 그리고 이에 근거한 제안이나 경고는 무시되고 그저 창고에 먼지와 함께
버려져 쌓여있기 일쑤다.
반면 외국기관이나 외국연구소의 경제예측은 보물단지로 둔갑된다.
하지만 바로 이런 지적 사대주의에 우리의 치명적 맹점이 있다.
워싱턴 소재 헤리티지 재단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개도국의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오측해 왔다는 보고서 (작성자:윌리암 W.비치)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지난 1986년부터 1998년까지 개도국경제와 관련, IMF가 내놓은
예측치와 실적치를 분석한 결과, IMF가 "지속적으로 낙관적
(overly optimistic) 오측"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정작 환란을 겪은 1997년, 국내경제전문가들은 위기도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않게 제기하고 있었지만 워싱턴 특히 IMF와 세계은행이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일관하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더욱이 세계은행등이 내놓는 경제예측보고서에 한국관련부분은 몇 줄 되지도
않는다.
실려있는 정보의 양이 적다고 그 정보에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인원,관심도등 이들 기관의 자체한계 때문에 분석이 피상적일 수
있다는 개연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이들 기관보고서의 한국관련문장 몇 줄에
빨간줄까지 그어가며 신주단지모시듯 한다.
워싱턴에 수많은 연구소들이 있지만 실제로 찾아가 보면 한국을 전담해서
연구하는 연구원은 거의 없다.
한국어를 전혀 모를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연구하면서 한국은 그 아류로
취급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문제목거리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들의 "속 빈 강정 현상"은 이름
있다는 명사들의 경우 더 심하다.
이른바 구름잡는 얘기에서 탈피, 깊이있는 의제로 유도하려들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하려는 경우가 많다.
유럽, 중국 일본 등 황금어장에 해당하는 주제를 제쳐놓고 "상업성 없는"
한국이라는 주제에 스스로를 묶어놓을 거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식인들은 귀한 달러를 허비해가며 이들을 초청,
스스로를 이들과 대등하게 대화하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과시하기에
바쁘다.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IMD)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순위에 우리나라처럼
일희일비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또다른 외국기자의 촌평이다.
절대적 평가도 아니고 그저 상대적순위에 불과한 IMD보고서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게 이 기자의 비판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이른바 "바보들의 행진" 증후군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 행렬이 오도된 것이라는 자각을 하면서도 한국인들은 이 행진대열에서
이탈하면 정말 바보로 인식될까봐 걱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게 이 기자의
지적이다.
< 워싱턴 특파원 양봉진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9일자 ).
하루는 한국신문에 난 기사를 인용 보도했더니 그때까지 잠잠하던 한국신문
들이 이를 크게 받아쓰더라는 것이다.
더 이상한 것은 이를 처음 다루었던 한국신문조차도 스스로의 "원조"
기사보다 더 크게 키우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추가로 취재한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 이 외신기자의 고백이다.
미국 굴지의 컨설팅회사에서 꽤나 인정을 받고 있는 한국인 컨설턴트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관해 경험도 쌓게 할 겸 미국인 부하직원을 데리고 갔다.
안내인의 소개로 만난 최고경영자(CEO)는 정작 상대해야 할 이 한국인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미국인만
상대하더라는 것이다.
CEO의 어설픈 영어 과시욕만 확인하고 왔다는 게 이 한국인의 실소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같은 내용이라도 코 큰 사람들이 얘기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다가도 한 솥 밥먹고 사는 자기 집안 사람의 얘기에는
코방귀를 뀌는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무리 잘 알려진 외국명문대 출신이더라도 한국인인 경우, 그 분석이나
전망 그리고 이에 근거한 제안이나 경고는 무시되고 그저 창고에 먼지와 함께
버려져 쌓여있기 일쑤다.
반면 외국기관이나 외국연구소의 경제예측은 보물단지로 둔갑된다.
하지만 바로 이런 지적 사대주의에 우리의 치명적 맹점이 있다.
워싱턴 소재 헤리티지 재단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개도국의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오측해 왔다는 보고서 (작성자:윌리암 W.비치)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지난 1986년부터 1998년까지 개도국경제와 관련, IMF가 내놓은
예측치와 실적치를 분석한 결과, IMF가 "지속적으로 낙관적
(overly optimistic) 오측"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정작 환란을 겪은 1997년, 국내경제전문가들은 위기도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않게 제기하고 있었지만 워싱턴 특히 IMF와 세계은행이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일관하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더욱이 세계은행등이 내놓는 경제예측보고서에 한국관련부분은 몇 줄 되지도
않는다.
실려있는 정보의 양이 적다고 그 정보에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연구인원,관심도등 이들 기관의 자체한계 때문에 분석이 피상적일 수
있다는 개연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이들 기관보고서의 한국관련문장 몇 줄에
빨간줄까지 그어가며 신주단지모시듯 한다.
워싱턴에 수많은 연구소들이 있지만 실제로 찾아가 보면 한국을 전담해서
연구하는 연구원은 거의 없다.
한국어를 전혀 모를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연구하면서 한국은 그 아류로
취급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문제목거리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들의 "속 빈 강정 현상"은 이름
있다는 명사들의 경우 더 심하다.
이른바 구름잡는 얘기에서 탈피, 깊이있는 의제로 유도하려들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하려는 경우가 많다.
유럽, 중국 일본 등 황금어장에 해당하는 주제를 제쳐놓고 "상업성 없는"
한국이라는 주제에 스스로를 묶어놓을 거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식인들은 귀한 달러를 허비해가며 이들을 초청,
스스로를 이들과 대등하게 대화하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과시하기에
바쁘다.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IMD)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순위에 우리나라처럼
일희일비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또다른 외국기자의 촌평이다.
절대적 평가도 아니고 그저 상대적순위에 불과한 IMD보고서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게 이 기자의 비판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이른바 "바보들의 행진" 증후군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 행렬이 오도된 것이라는 자각을 하면서도 한국인들은 이 행진대열에서
이탈하면 정말 바보로 인식될까봐 걱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게 이 기자의
지적이다.
< 워싱턴 특파원 양봉진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