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스트리트 11번지에 있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건물에서는 최근
역사적인 일이 있었다.

미국 노동계를 대표하는 노동총연맹산업별노조(AFL-CIO)의 존 스위니 회장이
증권거래소에 나타나 개장을 알리는 타종식을 거행한 것이다.

AFL-CIO는 산하에 68개의 지역 노조연맹과 1천3백여만명의 조합원을 둔
미국내 최대 노동단체.

1백여년의 활동과정에서 경영자측과 총격전을 벌인 일도 있을 정도의 강성
노조다.

이런 노동단체의 수장이 자본가들의 "총본산"인 NYSE에 나타난 것이다.

외신들은 이 순간을 노사화합의 새로운 자본주의 역사를 쓰는 역사적 순간
이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스위니 회장이 종을 치던 순간, "계급투쟁"이라는 기나긴
이념논쟁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주가도 이 순간을 기념하듯 이날 하룻동안 무려 2백35.24포인트(2.17%)나
뛰었다.

그러나 이같은 화기애애한 풍경의 이면엔 쇠퇴해가는 미국 노동운동의
실상이 가려져 있었다.

원래 스위니 회장의 NYSE 방문은 리처드 그라소 NYSE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노동절(6일) 기념행사라는 명분을 걸었다.

그러나 속셈은 딴 데 있었다.

노조대표이면서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연금펀드를 주무르는 "큰손" 스위니를
초청, 상장을 앞둔 NYSE에 투자토록 유도한다는 계산이었다.

스위니가 이같은 속셈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그는 NYSE에 갔다.

게다가 노조지도자로서는 처음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실 스위니는 어려운 상황에 몰려 있다.

지난 95년 그의 취임 이후 AFL-CIO는 조합원수뿐 아니라 전체고용인구 대비
조합원비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특히 97년 1천6백만명에 달하던 조합원수는 작년엔 1천3백만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노동 전문가들은 이를 AFL-CIO지도부의 오판때문으로 보고 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새 일자리 창출해야 한다는 경영자측 주장을 순순히
수용, 결과적으로 고용안정을 원하는 노조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위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용안정이 어려운 상태에서는 일자리라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주식활황이 필수적이다.

그가 난데없이 NYSE에까지 가서 "쇼"를 벌여 주가를 올린 이유도 이런 맥락
에서다.

그의 변신은 미국 노동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 박수진 국제부 기자 parks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