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터넷의 기원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2년 7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의 중형컴퓨터와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전신인 전자기술연구소(KIET) 컴퓨터가 1천2백bps 전용선으로 연결되면서
한국인터넷의 역사가 시작됐다.

SDN으로 불리던 이 전산망은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SDN은 곧바로 국외 네트워크에 연결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민간 주도의 전산망 구축 움직임에 발맞춰 87년 1월 전산망보급
확장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 정부 주도로 국가기간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연구망과 교육망을 분리해 국가전산망을 운영했다.

그것을 계기로 연구망(KREO넷)은 과학기술처 산하의 시스템공학센터, 교육망
(KREN)은 교육부 산하의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지금에 비해 매우 열악했다.

지금처럼 이미지 음성 동영상 등을 받아볼 수 없었다.

전용선이 아닌 1천2백bps의 전화선을 통해 외국의 전자우편을 받아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에는 수십 메가바이트에 해당하는 외국자료를 받을 수 없어 한달에
한번씩 항공우편을 통해 마그네틱 테이프 형태로 받아보곤 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키 위해 SDN에 참가한 기관들이 하나(HANA)라는 기구를
설립했다.

90년 3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컴퓨터와 하와이대학 컴퓨터가 전용선을
통해 연결되면서 인터넷의 모든 기관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열린 것이다.

94년부터 인터넷 인프라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인터넷산업이 성장하기 시작
했다.

제일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은 ISP(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였다.

코넷, 데이콤 인터넷, 아이네트 등이 직접 미국과 연결되는 전용선을 설치
하고 상업 서비스를 시작했다.

95년부터는 나우콤 천리안도 인터넷 접속 서비스에 나섰다.

96년에는 롯데백화점 데이콤 등이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하면서 전자상거래
가 급속히 성장했다.

이후 삼성물산 등 대기업들도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 사업에 적극 참여
하기 시작했다.

98년부터 포털사이트가 인터넷 업계의 최대 이슈로 등장했다.

99년으로 넘어오면서 야후코리아 다음커뮤니케이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들
간의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00년대에는 인터넷 인구의 팽창과 더불어 초고속 인터넷
과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중심으로 인터넷 산업이 급속히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 송대섭 기자 dsso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