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9일 인도네시아에서는
하비비 대통령의 사임설이 퍼지면서 통화가치와 주가가 폭락했다.

이날 인도네시아 외환시장에서 루피아화는 달러당 8천6백75루피아로 거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개장과 함께 매도주문이 쏟아져 이미 오전장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8천8백선이 무너졌다.

루피아는 이날 한때 달러당 9천20루피아까지 떨어졌다.

루피아화 가치는 전날에도 14.5%나 곤두박질쳤다.

자카르타 소재 외국은행 관계자는 "시장에서 걷잡을 수 없는 투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날 정부가 3조4천억루피아의 외환시장 안정화 자금을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전했다.

주식시장도 하비비 사임설과 동티모르 사태가 악재로 작용해 8일(-4.8%)에
이어 9일에도 장중 한때 2%가량 떨어졌다.

그러나 이날 오후 폐장을 앞두고 증시와 외환시장은 가까스로 전날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2차 시장개입에 나섰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앞서 8일 하비비 대통령은 12일 열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불참한다고 발표, 그의 사임 가능성을 불러일으켰다.

인도네시아의 군부실세인 위란토 국방장관겸 군 참모총장이 나서 사임설을
공식 부인했으나 동티모르 사태와 관련한 책임론이 거세지면서 하비비에 대한
사임압력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이같은 정정불안과 금융시장 혼란, 동티모르에서의 살인.방화에도 불구,
미국 등 서방선진국들의 동티모르 개입은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8일 "아직 군사적 개입을 고려치 않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티모르의 정국을 안정시키든지 국제 평화유지단을
받아들이든지 양자택일하라"고 제안했다.

그는 군사개입이 있더라도 아시아 국가들이 주도가 돼야 하며 미국은
병참만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개입은 실익이 없다고 보고 간접지원을 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이와함께 사태수습이 안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통한 4백70억 달러규모의 대 인도네시아 구제금융을 중단, 인도네시아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도 강구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8일 긴급회의를 열고 동티모르 사태가 안정되지 않을
경우 유엔이 "후속행동"을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유엔은 9일 오전10시부터 유엔 동티모르 파견대표단과 직원, 가족 등
3백72명중 일부만 남기고 동티모르의 주도 달리에서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이에대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어떤 외세의 군사적 개입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한편 외신들은 7일 계엄령이 선포됐지만 인도네시아 군부의 지원을 받은
민병대와 폭도, 인도네시아 경찰들이 테러와 약탈, 살인, 방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군 소유를 제외한 전기, 통신 등 모든 공공시설과 급수시설 등이
문을 닫거나 파괴됐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는 8일 동티모르에서 시간당 수백명씩
이 죽어가고 있다며 유엔 평화유지군의 즉각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 박수진 기자 parks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