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국민회의 의원 연수에서는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의 강연 내용이
화제가 됐다.

재벌을 바라보는 "인식의 이중성"을 국민 각 계층별로 정리한 내용이었다.

일반 국민의 경우 "재벌에 의한 부의 편중을 비판하면서도 재벌기업 제품을
선호하고 재벌기업에 취직하기를 원한다"고 강 장관은 갈파했다.

또 중소기업은 재벌에 대한 특혜를 문제삼으면서도 하도급 관계 때문에
재벌의 위축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기자의 눈에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재벌개혁에도 "이중성"이 눈에
띈다.

앞뒤가 안맞거나 조령모개식으로 오락가락하는 얘기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차단"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작년만 해도 "주인 있는 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며 동일인 지분제한
폐지를 추진했다.

그러다 올들어 갑자기 1백80도 선회해 제2금융권에 대해서까지 "주인 없는
금융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출자총액제한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에 맞추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이 제도를
폐지한게 작년 2월이다.

그런데 2년이 채 안돼 다시 부활시켰다.

반면 소유구조를 투명화할 수 있는 지주회사 설립요건은 꽁꽁 묶어둔채
요지부동이다.

기업이 지향해야 할 목표에 대한 시각도 어지럽다.

정부는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장치를 잔뜩 준비중이다.

그러면서도 기업들엔 "장기적 안목을 갖고 경쟁력 향상을 이룩해달라"고
주문한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소수주주가 누구인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주식시장에서 투기적 동기로 주식을 산 사람들
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단기적 성과다.

배당을 많이 받는 것이 "장땡"이다.

반면 장기적 안목을 갖고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익의 상당부분을 사내에
유보하거나 재투자해야 한다.

재벌개혁이 이처럼 우왕좌왕하는 이유는 뭘까.

재벌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정부내에서 아직 의견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좀더 까놓고 얘기하면 사공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재벌개혁이냐 해체냐를 두고 논란이 인 것도 따지고보면 여권내 일각에
재벌해체론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다 결국 재벌뿐만 아니라 기업을 산으로 몰고 가게 되지 않을까 염려될
뿐이다.

< 임혁 경제부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