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베이 사이트(www.ebay.com)는 곧잘 다운이 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네티즌들이 방문하는 사례가 잦기 때문이다.

인터넷 경매 사상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홈런왕 맥과이어의 70호
홈런볼 경매 때도 하마터면 다운이 될 뻔했다.

경매 실황을 보기 위해 7백만명에 이르는 네티즌들이 동시에 e베이
홈페이지에 접속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일화를 낳았던 이 경매에서 70호 홈런볼은 3백만달러에 낙찰됐다.

홈런볼 경매행사를 계기로 경매전문 사이트 e베이의 권위와 명성은 더욱
높아지게 됐다.

인터넷 뉴스그룹 "씨넷(CNET)"은 "이번 이벤트의 최대 수혜자는 e베이"라며
"창립자 피에르 오미디아르가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냈다"고 보도했다.

오미디아르는 어린시절 늘 외토리였다.

수줍은 성격에 언어능력이 뒤져 어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소르본느대 교수로 재직하다 존 홉킨즈대로 옮긴 부친을 따라온
미국이란 나라는 내성적인 성격의 12세 소년에겐 낯설기만 했다.

친구가 없는 아들을 걱정한 어머니는 외로움을 달래라는 뜻으로 38달러짜리
중고컴퓨터를 사줬다.

낡아빠진 컴퓨터는 곧 소년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수줍기만 했던 오미디아르의 성격이면에는 그러나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이
있었다.

이는 연구하고 사색하는 습관으로 이어져 나중에 e베이 사업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두드러진 특징은 없었지만 오미디아르는 하나의 주제에 열심히 매달리는
성격의 학생이었다. 말도 별로 없었고, 말썽 한번 부린 적이 없었는데
이제와서 큰 사고를 친 것 같다. 오미디아르가 이렇게 성공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다"

중학교 은사였던 매트 크루거 선생은 오미디아르를 이같이 평하며 그의
성공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터프츠대학(컴퓨터공학.88년 졸업) 시절에도 그는 평범했다는 게 주변
인물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수많은 학생들을 컴퓨터 업계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그가 어떤 회사에
갔는 지 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보통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데이비드 크룸 터프츠공대교수)

e베이가 나스닥에 상장된 것은 지난해 9월24일.

애인(현재 부인)에게 선물하려 인터넷 벼룩시장에 캔디상자를 사겠다는
공고를 띄우자 수천명이 몰려든데서 아이디어를 얻어 회사를 세운 지 꼭
3년만이다.

CNN은 "e베이주식이 공모가 18달러에서 상장 첫 날 47.38달러로 치솟았다.
오미디아르는 자산 61억달러의 "벼락부자(accidental billionare)"가 됐다"고
보도했다.

주식의 30%를 갖고 있는 그는 이날 하루에만 2억7천4백10만달러라는 돈을
벌어들였다.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도 연초 "TOP CEO 25인" 명단을 발표하며 그를
21세기의 "e비지니스의 선두주자"로 추천했다.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꿨으며 인터넷 경매를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시켰다는 찬사도 곁들였다.

오미디아르 성공의 또다른 비결은 "e베이에는 사고가 없다"는 신뢰감을
수요자들에게 확고하게 심어준데 있다.

e베이 사이트에서 발생한 경매 사기사고가 1만건당 1건에 불과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최대 거래량을 자랑하는 e베이 사이트에서 사기사고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오미디아르의 탐구정신에서 비롯됐다.

"오미디아르는 설계자 편이 아닌 수요자 편에서 생각할 줄 아는 재능을
가졌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수십번이고 뜯어고쳐서 컴퓨터를 잘 모르는
일반인도 프로그램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애플컴퓨터에서 프로그램 설계자로 같이 일했던 동료이며, e베이 창사멤버인
제프 스콜(33)의 오미디아르에 대한 평가다.

돈은 오미디아르에게 단순히 부의 상징이 아니다.

재정독립이라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3월말 해외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아메리카 온라인(AOL)"의 공용망을
사용키로 계약할 때 일이다.

오미디아르는 제휴비용 7천5백만달러 전액을 사재로 충당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이를 의심했다.

그러나 조사결과 오미디아르가 자신소유 3천7백60만주 중 79만주를 처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상생활에서도 돈에 대한 철학은 그대로 적용된다.

오미디아르에겐 개인 사무실이 없다.

자동차도 다른 사람이 2년동안 사용하던 중고차일 뿐이다.

오미디아르가 처음부터 성공을 보장받은 것은 아니었다.

창업초기인 지난 95년 9월부터 96년 3월까지는 영업실적이 전무했다.

한달에 3백달러씩 드는 랜통신망 임대료와 빵값을 벌기 위해 낮에는 다른
컴퓨터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것은 96년 7월께.

웹사이트 운영체계를 끊임없이 개선한 결과 4월 이후 경매건수가 늘기
시작했다.

5월에 처음으로 1천건을 돌파했고 6월엔 1천5백건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여자친구 위즐리에게 스테이크를 사줄 여유도 생겼다.

경제비평가인 토마스 스탠리는 저서 "억만장자가 되는 7가지 법칙"에서
"오미디아르가 인터뷰 내용보다 사례금 1백달러에 더 군침을 흘렸다"며 그의
단면을 소개하기도 했다.

화려하게 성공한 32세 억만장자는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

스탠리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로다. 변할 게 없다. 온라인 경매를 위해 완벽하고 체계적인 웹사이트
를 만드는 것, 그래서 수요자들이 안심하고 거래하는 것, 이제껏 내가 해온
일들이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다"

< 방형국 기자 bigjob@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