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세권과 헌법경제학 ]

김정호 < 경제학 박사 >

조세학자들에게 익숙한 단어 중에 중립세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행위에 대해 조세가 부과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들어 휘발유 소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면 세금이 부과되지 않을 때에
비해 휘발유 소비를 줄여 세금을 줄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납세자가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세금들이 있는데, 그것을 중립세
라고 부른다.

인두세처럼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액이 부과되는 세금 같은
것이다.

전통적으로 조세학자나 재정학자들은 형평성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중립세에
가까울수록 좋은 조세로 여겨 왔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시장의 효율성을 믿는다.

중립적이 아닌 세금은 시장에서 이루어졌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행동을
왜곡시켜 효율성을 낮춘다.

중립세는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시장의 효율성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중립세는 좋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비과세 감면의 범위를 줄인다든가, 과세대상간의 세율 격차를 줄인다든가,
과세 대상의 범위를 넓히는 등의 일은 대개 조세의 중립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뷰캐넌 같은 헌법경제학자들은
중립세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중립세의 효율성은 과세권자가 진정으로 국민의 복지를 위한다는 전제하
에서만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세당국이 진정 국민의 복지를 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 복지보다는 오히려 가능한 한 많은 세금을 거두고 싶어하는 것이
정부라고 그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헌법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중립세는 매우 위험한 세금이다.

납세자들의 조세회피가 쉬울수록 정부는 세부과에 신중해진다.

그런데 중립세란 피하기가 어려운 세금이다.

중립세에 가까운 세금일수록 정부가 지나치게 높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능력도 커진다.

지나친 세금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중립세는 비효율적이다.

이같은 일을 막기 위해 헌법에다가 국민 총조세부담율을 못박아서 세금이
그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헌법경제학자들은 제안한다.

조세부담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비춰 볼 때 귀담아
들을만한 제안이다.

<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www.cfe.or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