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 증권가 주름잡던 큰 손 고성일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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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년대초 "광화문 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증권가를 주름잡았던
큰 손 고성일씨가 지난 10일 숨진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향년77세.
고씨는 6.25 전쟁 이후 염료 수입업으로 번 돈을 서울 주변 땅에 투자해
거부가 된 후 지난 78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80년대 초반에는 증권가를 휘어잡으며 하루 전체 주식거래 규모 1백억원중
약 30%가 그의 계좌에서 나왔을 만큼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사양길로 접어든 건설주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다가 큰
손실을 보고 주식시장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7년 4월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대모산 사유림내의
공공체육시설 철거를 둘러싼 서울시와의 송사에서 승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족은 제주도에서 레저업을 하고 있는 장남 경훈씨와 영화 "아버지"의
제작자였던 둘째 아들 동훈씨 등 2남5녀가 있다.
발인은 13일 오전 9시30분, 장지는 경기도 분당 공원묘지.
< 장유택 기자 chang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4일자 ).
큰 손 고성일씨가 지난 10일 숨진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향년77세.
고씨는 6.25 전쟁 이후 염료 수입업으로 번 돈을 서울 주변 땅에 투자해
거부가 된 후 지난 78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80년대 초반에는 증권가를 휘어잡으며 하루 전체 주식거래 규모 1백억원중
약 30%가 그의 계좌에서 나왔을 만큼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사양길로 접어든 건설주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다가 큰
손실을 보고 주식시장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7년 4월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대모산 사유림내의
공공체육시설 철거를 둘러싼 서울시와의 송사에서 승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족은 제주도에서 레저업을 하고 있는 장남 경훈씨와 영화 "아버지"의
제작자였던 둘째 아들 동훈씨 등 2남5녀가 있다.
발인은 13일 오전 9시30분, 장지는 경기도 분당 공원묘지.
< 장유택 기자 chang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