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는 유럽연합(EU)이 있고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이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이에 필적할 만한 무역협정이나 공동시장이 없다.
굳이 들자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꼽을수 있지만 경제규모와 세계시장
영향력면에서 EU나 NAFTA에 비할 바가 못된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동아시아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지만 APEC는 아시아 각국을 경제.통화위기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물론 그럴만한 힘도 없었다.
APEC는 아시아시장의 개방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
APEC의 이같은 정책에서 누가 이익을 보게 될 지는 뻔하다.
나는 지난 8월 중국방문때 가진 양국 정.재계 지도자 포럼에서 동아시아
경제회의(EAEC)구상을 다시한번 주창했다.
이 구상은 수년전부터 주장해 왔던 것이다.
미국은 뒤늦게 APEC에 가입하고서도 힘으로 주도권을 빼앗았다.
따라서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만약 EAEC설립 구상이 주변국의 지지를 받아 진작에 구체화됐다면 지난
97년의 아시아통화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제창하고 있는 아시아통화기금(AMF)구상도 EAEC와 같은 협의체가
만들어져 있었다면 그 안에서 깊이있는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번 중국방문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다시 한번 나의 구상에 지지를
보냈다.
나는 중국의 장쩌민 주석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는 중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내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는등 해외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10년전 상하이의 당서기였을때 그는 자유무역지대를 시찰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중국의 주룽지 총리와는 두세번 만났다.
주총리는 풍부한 지식을 가진 인물로 중국 정부내에서 경제분야의 정책을
취합할 만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두 지도자의 사고방식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장 주석은 정치에, 주 총리는 경제에 능통하다.
두 사람의 팀웍은 매우 우수하다.
이들은 중국을 매우 실용적으로 이끌고 있다.
덩샤오핑이 이끈 중국은 풍요로워지는데 중점을 뒀다.
지령형경제를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치개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강한 정부만이 개혁을 추진할 수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룻밤의 결단으로 정치 경제 시스템을 바꾸려 했던 다른 공산주의국들에
비해 중국의 개혁은 "열매"를 맺고 있다.
민주적 정부로 급속히 이동할 경우, 경험부족으로 인해 민주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뼈아픈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한꺼번에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점진적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덕에 다른 동유럽국가와는 달리 폭동같은 사회 대불안을 겪지 않았다.
이제 경제적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WTO가입은 세계경제무대에서 주요 이슈중 하나다.
여기서도 미국같은 선진국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는 대국이다.
중국이 세계 모든 나라를 향해 시장을 개방하면 세계도 중국에게 같은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 단순한 문제에 여러가지 조건을 붙이고 있다.
중국의 WTO가입에 조건을 붙이는 미국의 방식은 잘못됐다.
중국이 가입하고 안하고는 미국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WTO가 해야 할 일이다.
WTO는 국제기관이다.
어떤 강국도 WTO의 정책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 WTO는 더 이상 국제기구가 아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항상 인권문제를 끄집어낸다.
인권문제를 단순히 정치적 권리만으로 보지 않고 "자기답게 살 권리" "일할
권리" "(인간다운)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로까지 확대한다면 구미 여러나라가
과거에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인권을 유린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중국에는 인권침해 사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WTO에 가입하지 못함으로써 12억명의 권리가 부정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결점을 하나 둘씩 들추다 못해 이제는 중국을
잠재적인 적으로 바라보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거듭 주장하건데 우리는 그같은 미국이 주도하는 APEC에 아무 생각없이
들러리나 서는 우매함을 보여서는 안된다.
< 정리=박재림 기자 tr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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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최근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기고한
글을 발췌, 정리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12~13일 열린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