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무용수 시라카와 나오코.

그의 무대는 경이로웠다.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작고 앙상한 몸.

하지만 그 몸에서 뿜어나는 폭발적인 힘과 에너지는 관객을 황홀경으로 몰아
넣었다.

지난 9~10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려진 일본 H.R 카오스 무용단의 여성
솔로댄스 "로미오와 줄리엣"(99세계무용축제 참가작)은 수준높은 무용에
목말랐던 국내 무용팬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로미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한것.

신부의 실수로 주인공들의 죽음을 초래했던 원작과는 달리 비극의 원인을
Y2K로 인한 소통의 단절로 설정했다.

독창적인 해석도 돋보였지만 80여분동안 모노드라마를 펼친 재일교포 무용수
시라카와 나오코가 단연 빛을 발했다.

시라카와는 미국의 "댄스 매거진"이 6년연속 최고 무용수로 선정한 일본의
대표적인 무용수.

러시아의 전설적인 발레리노였던 니진스키가 재림했다는 격찬까지 받고
있을 정도다.

이번 무대에서도 그의 명성은 유감없이 확인됐다.

잔상이 보일만큼 빠르고 날카로운 움직임, 강력한 힘이 넘치면서도 절도를
잃지 않는 동작, 근육 하나하나가 빚어내는 미묘한 떨림...

시라카와는 여성이면서도 남성성을 동시에 지닌듯한 신비스런 이미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한치의 빈틈없는 테크닉은 치밀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안무와 어우러져
더없이 아름다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여주었다.

작지 않은 공간을 80분간 홀로 채우면서도 끝까지 힘과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무대 조명이나 비디오 아트를 방불케 하는 영상도 작품을 돋보이게 했다.

< 김혜수 기자 dears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