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뉴욕외환시장.

엔화가치가 달러당 1백6엔을 넘어 1백5.9엔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 무렵 백악관 기자회견실.

로렌스 서머스 미국재무장관은 다시한번 "강한 달러"를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은 마이동풍이었다.

엔화는 더 올라가고 달러는 더 약해졌다.

엔화가치는 이날 한때 1백5.15엔까지 치솟았다.

96년 5월4일(1백4.80엔) 이후 최고였다.

하루전인 지난 13일 오전 도쿄시장.

"엔고"씨는 1백7엔을 지나 1백6엔선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대장상이 긴급성명을 냈다.

"엔고가 너무 급격하다. 시장에 개입하겠다."

그리고 바로 시장에서 10억달러 규모의 달러화를 사고 그만큼 엔화를
팔았다.

엔화 오름세가 멈칫하면서 1백7엔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순간이었다.

엔화는 곧바로 다시 1백6엔대로 올라섰다.

국제외환시장에 "어른"이 없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시장은 콧방귀만 뀐다.

일본의 통화책임자가 "엔고를 우려한다"고 말하면 엔화 오름세는 가속화
된다.

미국의 통화책임자가 "강한 달러를 원한다"고 하면 시장은 "약한 달러"로
응답한다.

시장질서를 잡는 리더가 없는 게 국제외환시장의 현주소다.

미국 프루덴셜증권의 환율분석가 래리 윗첼은 "시장을 휘어잡을 만한
인물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따라 국제외환시장이 격랑속으로 빠져 들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서머스 재무장관과 스튜어트 아이젠스타트 재무부 장관, 일본의
미야자와 대장상, 구로다 하루히코 대장성차관, 하야미 마사루 중앙은행총재
...

모두 엔.달러 환율을 관장하는 핵심 인사들이다.

그렇지만 외환시장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낮다.

직책은 대단하나 외환시장 영향력은 거의 없는 "빛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환율이 출렁일때 중심을 잡아주는 "어른들"이 있었다.

미국의 로버트 루빈 전재무장관과 일본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대장성차관
이 그들이었다.

달러가 급락할때 루빈이 "미국은 강한 달러를 원한다"고 하면 달러가치가
회복됐다.

엔이 크게 뛸때 "지나친 엔고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사카키바라가 한마디
하면 엔고추세가 진정되곤 했다.

두 사람은 지난 7월초 현직에서 물러났다.

그후 지금까지 외환시장은 "리더 공백기"다.

시장관계자들은 그 이유중 하나로 루빈과 사카키바라가 그동안 외환시장에서
"너무 큰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전임자들의 입김이 매우 강했던 탓에 후임자들이 선배들의 빛에 가려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머스장관이나 구로다차관이 아직 국제금융시장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도
또 다른 이유라는 진단도 있다.

양국의 외환정책 핵심인물인 이 두사람의 말발이 서지 않으니 하야미 총재나
미야자와 대장상 등 다른 사람들의 영도 안선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다른 인물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이 지목하는 "제3의 인물"은 앨런 그린스펀 미연준리(FRB) 의장.

그는 지금까지 환율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증시의 과열여부를 언급하면 간접적인 영향으로 달러가치가 변하는
정도였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린스펀이 환율을 직접
거론하면 외환시장도 같은 방향으로 반응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루빈과 사카키바라가 사라진 지금 그린스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환시장의 어른이 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