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택선 < 한국외대 교수 / 경제학 >

경제위기가 시작된지도 벌써 2년이 다 돼간다.

97년말 고조되는 위기감속에서 대통령후보로 나섰던 이들은 저마다 단기간에
위기를 극복할수 있는 방책이 있다고 주장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위기를 극복했는가.

경제성장률이 회복됐고, 무역수지가 꾸준히 흑자를 보이고 있고, 주식시장이
바닥으로부터 3배 이상 뛰었고, 몇몇 업종에서 이른바 빅딜이 성사됐고 ,금융
구조의 개편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렇게만 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착실하게 문제를 해결해왔고 앞으로도
충분히 희망은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보인것은 지난해 생산수준이 워낙 낮았기
때문이고, 무역수지흑자는 그 폭이 줄어들고 있으며, 주식시장은 변동폭이
커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금융구조개혁이 아직 완결되지 못하고 있어 언제든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경기과열, 또는 경제회복의 과속을 우려하기도 한다.

우리 경제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왜 이리도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못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그것은 정부의 정책이 큰 틀을 잡지 못하고 위기극복과 구조개혁에
대해서 임기응변식 대응을 하고 있다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겪었던 위기 상황을 1930년대의 대공황에 견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공황으로부터의 회복과정이었던 이른바 뉴딜정책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검토하고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뉴딜정책은 우선 그 정책의 기본정신으로 3R를 내세웠다.

극심한 경기침체로부터 일단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으로 회복시키고(relief),
그런 다음 공황 이전의 상황으로 경제를 끌어올리며(recovery), 공황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 이를 제도적으로 개혁하는(reform) 것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원칙 아래, 루스벨트 행정부는 1933년3월 집권하자마자 은행파산의
고리를 끊고자 금융기관의 휴업을 실시했다.

또 끝없이 하락하는 물가로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진다고 판단해 농산물과
공산품의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물가상승과 소득증대를 유도했다.

이와 함께 은행파산을 막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 예를 들어
연방예금보험공사를 만든다든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구성을 바꾼다든지 하는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이와 아울러 테네시계곡사업국(TVA)을 통한 댐공사 등 재정지출을 확대하기
위한 공공사업도 실시했다.

더욱이 이같은 3R에 기초한 경제위기 극복 정책은 대부분 입법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물론 공업부문에서 기업간 과열경쟁과 이에 따른 공급과잉을 줄이기 위해
경쟁을 제한했던 것 등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1933년4월
부터 회복을 위한 "제1차 1백일"이라 일컬어지는 짧은 기간동안 이러한
정책이 입법화됐다.

오늘날 후세의 경제사학자들은 이같은 경제정책이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공황이전의 수준을 회복하는 데 뉴딜이 시작된 이후
4~5년이 걸렸고, 실업률 같은 경제지표는 오히려 뉴딜로 인해 회복이 지연
됐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경제사학자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한가지 사실은
뉴딜이 물가하락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경제회복에
도움이 됐다는 점이다.

물가가 하락함으로써 앞으로도 물가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이는
실질금리가 오르는 것을 의미하며 이렇게 되면 기업들의 투자가 줄어들게
된다.

뉴딜이 바로 이같은 물가하락-투자감소-경기침체의 가속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는 것이다.

위기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고 다시는 그런 위기에 빠지지않도록 구조적
개혁을 수행하는데 있어 정부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정부가 그만큼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있으며, 정책시행에
체계를 확보하고 신중을 기함으로써 국민과 정책시행의 대상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정부 정책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게 되면 정책 자체가
체계성을 갖지 못해서 문제일뿐 아니라 국민과 기업들로 하여금 위기극복의
경제심리적 효과를 거둘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제라도 그간의 잘되고 잘못됐던 정책을 점검하고 체계적인 틀을 다시
짬으로써 민간에 대해 예측가능한 회복과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 tsroh@san.hufs.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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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석.박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