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 아이네트 대표이사 >


여성의 사회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예전보다 여기자 여검사 여선생 등의
용어가 훨씬 덜 쓰이고 있다.

여권론자도 아니고 남성우월주의자도 아닌 나는 직장에서 여성과 더불어
일하는 상사의 입장에서 여성의 전문가 정신에 대해 느낀 바를 말하려고 한
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기업의 남녀차별 육아 또는 소위 "시"자로 시작하는
시댁과의 문제 등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장애가 곳곳에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지난 10여년간 지켜본 여성들의
전문가 정신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가령 기업의 대표이사로서 신규 채용 면접에 들어가면 나는 반드시 여성
응시자들에게 "결혼하고 나서도 직장을 다니겠습니까? 혹시 집안에서
반대하더라도 계속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한결같이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전문인으로서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 직장을 계속 다닐 것이며 설령 결혼후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더라도 계속 직장생활을 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실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여성들의 직장관이 근본적으로 남자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즉 여성들은 회사안에서 인간적 갈등을 느끼거나 업무에 불만을 가질 때,
또는 여성에 불합리한 체제를 맞닥뜨렸을 때 흔히 "이것도 저것도 다 힘든데
집에서 아이나 키우고 살림하는 것이 낫겠다"고 쉽게 포기하는 것같다.

직장생활에 대한 전문가 정신이 결여된 부하 직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상사나 경영자로부터 백안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경향이 여성에게 더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자연히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성 직원보다 남성 직원에 더 손을 내밀게 된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하지 않는 자유는 남자나 여자 모두 가질 수 있다.

근원적인 인간 자유에 대한 부분은 논외로 하고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할 때 적어도 한번쯤은 입사때 가졌던 그 진지함을 되새기며 끝까지
해내겠다는 "쟁이정신", 즉 전문가정신을 되새겨 주었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