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 100년] 국민의 발...산업동맥..'한국철도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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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1814년.
그로부터 85년 뒤인 1899년 이땅에 첫 기적소리가 울렸다.
아시아에서는 인도 일본에 이어 세번째다.
경인선 노량진~제물포간 33.2km를 개통, 영업을 시작한 한국철도는 이후
한세기를 지나는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서 1백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국민들과 애환을 같이
해온 철도는 당초 일제가 러일전쟁에 승리하면서 한반도를 대륙침략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부설하기 시작했다.
이어 경부선과 경의선이 잇달아 개통됐고 불과 7년만인 1906년에는
1천27km나 뻗어가며 빠른 속도로 국토전반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수탈의 수단이었다.
일제말기 총연장 6천km에 달하는 최대의 국영기업체로 부상했던 철도는
6.25전쟁을 치르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기관차의 51%와 역사 41%, 철로 7.5%가 파괴되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마는 쉬지 않았다.
전쟁중인 51년에는 유엔군의 디젤기관차 35량이 선보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55년 6월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던 운영권을 넘겨받은 철도는 함백선 등
산업철도를 건설하면서 훗날 국토개발과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63년에는 철도청이 발족되면서 본격적인 철도시대가 개막됐다.
65년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산업선의 전철화를 지시해 전기철도시대의
서막을 올렸다.
67년 8월에는 서울역에서 증기기관차가 마지막 기적을 울렸다.
74년에는 수도권 전철 개통과 함께 지하철 시대가 열렸다.
80년대 들어서면서 국산 디젤기관차와 전동차가 개발돼 철도 국산화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됐다.
90년대에는 늘어나는 철도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주요 노선의 복선화 및
복복선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아울러 민자역사 개발, 역세권 개발과 철도관련 상품개발, 기업경영개념
도입 등 철도 소프트웨어 분야의 발전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결과 철도는 이제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묶어줄 시속 3백km의 고속철도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동안의 변모는 말그대로 상전벽해다.
<> 철도차량 =경인철도 개통 당시 철도차량은 증기기관차 4대와 목제 객차
6량, 화차 28량이 전부였다.
그러나 1백주년을 맞는 현재는 기관차 2천8백96량, 객차 1천6백40량, 화차
1만3천3백95량으로 늘어났다.
<> 영업거리 =개통 당시 33.2km에 불과하던 영업거리는 정부수립 당시
4천6백30km로 성장했으나 남북분단으로 절반 이하로 위축됐다.
그러나 전후 활발한 산업화로 70년대초에는 4천7백km로 늘어났고 현재는
6천5백80km에 달한다.
<> 역사 및 종사원 =초창기 7개의 역으로 출발한 철도역은 48년 3백88개,
62년 4백99개로 늘어났고 현재는 6백31개로 확대됐다.
종사원은 1백19명으로 시작해 83년 4만2천명까지 늘어나기도 했으나 전산화
와 구조조정으로 현재는 3만5천40여명이다.
<> 운행횟수와 수송량 =열차 1일 운행회수는 장거리 여객열차의 경우 초창기
4회에서 현재 6백28회로, 수도권 전철은 74년 1백63회에서 지금은 1천7백62회
로 대폭 증설됐다.
화물열차도 하루 4백25회를 운행한다.
수송량도 꾸준히 증가해 정부수립기에는 연간 여객 6천1백만명, 화물
5백만t을 실어 날랐다.
산업화 초창기인 61년에는 연간 여객 1억명, 화물 1천8백만t으로 각각 53%와
88.2%라는 경이적인 수송분담률을 기록했다.
현재는 화물 4천3백만t, 여객 8억2천7백만명으로 각각 25%와 15.8%의
분담률을 나타내고 있다.
<> 열차속도 =개통 당시 평균 20km의 속도로 노량진~제물포간을 1시간
30분에 달렸다.
서울~부산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1906년 융희호가 최고 70km의 속도로
11시간을 달렸고 46년 해방호가 최고 80km로 9시간, 60년 무궁화호
디젤기관차가 95km로 6시간40분, 69년 관광호가 1백10km로 4시간50분에
각각 주파했다.
이후 85년 새마을호가 등장해 최고 1백40km(평균 1백7km)로 달려 오늘에
이르렀다.
고속철도 개통되면 시속 3백km로 서울~부산간을 1시간47분만에 주파하게
된다.
[[ 한국철도 1백년 연혁 ]]
<>1899.9.13 =궁내부 내장원에 서북철도국 설치
<>1899.9.18 =경인선(노량진~제물포) 33.2km 개통
<>1900.7. 5 =한강철교 준공
<>1905.1. 1 =경부선(서울~부산) 개통
<>1906.4. 3 =경의선(서울~신의주) 개통
<>1914.1.11 =호남선(대전~목포) 개통
<>1931.8. 1 =장항선(천안~장항) 개통
<>1942.4. 1 =중앙선(청량리~경주) 개통
<>1967.8.31 =증기기관차 운행중단. 디젤기관차시대 개막
<>1972.3.17 =전기기관차 첫 운행
<>1974.8.15 =수도권전철 개통
<>1988.1.26 =철도박물관 개관
<>1989.3.25 =서울역 민자역사 개관
<>1991.5. 4 =영등포 민자역사 개관
<>1992.6.30 =경부고속철도 기공
<>1998.8. 8 =철도청 정부대전청사로 이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8일자 ).
그로부터 85년 뒤인 1899년 이땅에 첫 기적소리가 울렸다.
아시아에서는 인도 일본에 이어 세번째다.
경인선 노량진~제물포간 33.2km를 개통, 영업을 시작한 한국철도는 이후
한세기를 지나는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서 1백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국민들과 애환을 같이
해온 철도는 당초 일제가 러일전쟁에 승리하면서 한반도를 대륙침략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부설하기 시작했다.
이어 경부선과 경의선이 잇달아 개통됐고 불과 7년만인 1906년에는
1천27km나 뻗어가며 빠른 속도로 국토전반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수탈의 수단이었다.
일제말기 총연장 6천km에 달하는 최대의 국영기업체로 부상했던 철도는
6.25전쟁을 치르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기관차의 51%와 역사 41%, 철로 7.5%가 파괴되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마는 쉬지 않았다.
전쟁중인 51년에는 유엔군의 디젤기관차 35량이 선보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55년 6월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던 운영권을 넘겨받은 철도는 함백선 등
산업철도를 건설하면서 훗날 국토개발과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63년에는 철도청이 발족되면서 본격적인 철도시대가 개막됐다.
65년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산업선의 전철화를 지시해 전기철도시대의
서막을 올렸다.
67년 8월에는 서울역에서 증기기관차가 마지막 기적을 울렸다.
74년에는 수도권 전철 개통과 함께 지하철 시대가 열렸다.
80년대 들어서면서 국산 디젤기관차와 전동차가 개발돼 철도 국산화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됐다.
90년대에는 늘어나는 철도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주요 노선의 복선화 및
복복선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아울러 민자역사 개발, 역세권 개발과 철도관련 상품개발, 기업경영개념
도입 등 철도 소프트웨어 분야의 발전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결과 철도는 이제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묶어줄 시속 3백km의 고속철도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동안의 변모는 말그대로 상전벽해다.
<> 철도차량 =경인철도 개통 당시 철도차량은 증기기관차 4대와 목제 객차
6량, 화차 28량이 전부였다.
그러나 1백주년을 맞는 현재는 기관차 2천8백96량, 객차 1천6백40량, 화차
1만3천3백95량으로 늘어났다.
<> 영업거리 =개통 당시 33.2km에 불과하던 영업거리는 정부수립 당시
4천6백30km로 성장했으나 남북분단으로 절반 이하로 위축됐다.
그러나 전후 활발한 산업화로 70년대초에는 4천7백km로 늘어났고 현재는
6천5백80km에 달한다.
<> 역사 및 종사원 =초창기 7개의 역으로 출발한 철도역은 48년 3백88개,
62년 4백99개로 늘어났고 현재는 6백31개로 확대됐다.
종사원은 1백19명으로 시작해 83년 4만2천명까지 늘어나기도 했으나 전산화
와 구조조정으로 현재는 3만5천40여명이다.
<> 운행횟수와 수송량 =열차 1일 운행회수는 장거리 여객열차의 경우 초창기
4회에서 현재 6백28회로, 수도권 전철은 74년 1백63회에서 지금은 1천7백62회
로 대폭 증설됐다.
화물열차도 하루 4백25회를 운행한다.
수송량도 꾸준히 증가해 정부수립기에는 연간 여객 6천1백만명, 화물
5백만t을 실어 날랐다.
산업화 초창기인 61년에는 연간 여객 1억명, 화물 1천8백만t으로 각각 53%와
88.2%라는 경이적인 수송분담률을 기록했다.
현재는 화물 4천3백만t, 여객 8억2천7백만명으로 각각 25%와 15.8%의
분담률을 나타내고 있다.
<> 열차속도 =개통 당시 평균 20km의 속도로 노량진~제물포간을 1시간
30분에 달렸다.
서울~부산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1906년 융희호가 최고 70km의 속도로
11시간을 달렸고 46년 해방호가 최고 80km로 9시간, 60년 무궁화호
디젤기관차가 95km로 6시간40분, 69년 관광호가 1백10km로 4시간50분에
각각 주파했다.
이후 85년 새마을호가 등장해 최고 1백40km(평균 1백7km)로 달려 오늘에
이르렀다.
고속철도 개통되면 시속 3백km로 서울~부산간을 1시간47분만에 주파하게
된다.
[[ 한국철도 1백년 연혁 ]]
<>1899.9.13 =궁내부 내장원에 서북철도국 설치
<>1899.9.18 =경인선(노량진~제물포) 33.2km 개통
<>1900.7. 5 =한강철교 준공
<>1905.1. 1 =경부선(서울~부산) 개통
<>1906.4. 3 =경의선(서울~신의주) 개통
<>1914.1.11 =호남선(대전~목포) 개통
<>1931.8. 1 =장항선(천안~장항) 개통
<>1942.4. 1 =중앙선(청량리~경주) 개통
<>1967.8.31 =증기기관차 운행중단. 디젤기관차시대 개막
<>1972.3.17 =전기기관차 첫 운행
<>1974.8.15 =수도권전철 개통
<>1988.1.26 =철도박물관 개관
<>1989.3.25 =서울역 민자역사 개관
<>1991.5. 4 =영등포 민자역사 개관
<>1992.6.30 =경부고속철도 기공
<>1998.8. 8 =철도청 정부대전청사로 이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