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각서 체결이후 8개월여를 끌어온 정부와 뉴브리지캐피탈 간의 제일은행
매각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주말 타결됐다.

7조원 가까운 공적자금을 쏟아붓고도 고작 5천억원에 주식 51%를 넘기기로한
협상결과는 우리를 허탈케 하기에 충분하다.

애초부터 "헐값매각"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금융개혁을
한단계 진전시킨 이정표적 사건"이라는 주요 외신들의 찬사에 위안을 느끼기
보다는 "본전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들어간 공적자금은 차치하고라도 기존 채권에 대해 2년안에 부실이
발생하면 정부가 전액 되사주고, 대우 등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여신은 3년간
정부가 책임지기로 했다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공적자금이 들어갈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나 "본전"에만 집착, 협상을 질질 끌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간다.

제일은행의 해외매각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약속이었고 외국투자가들의
눈에는 한국의 금융개혁.개방 의지를 시험하는 상징적 케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이번 제일은행 매각협상의 타결은 대우사태로 한국의 경제상황에
우려를 표시해온 많은 외국투자가들의 시각을 교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장 얼마간의 돈을 더 받는 것보다 외국투자가의 마음을 돌리고 국제사회
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국익에 더 큰 도움이 될수도 있다.

제일은행 매각은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만 우리측의 협상력에 문제가 많았고
협상타결 시점을 정치.외교일정에 무리하게 맞추려다 오히려 일을 더 꼬이게
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는 점은 깊이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아직 본계약까지의 남은 절차도 만만치 않은 만큼 지금까지의 경험을
교훈삼아 깔끔한 마무리가 있어야 한다.

또 앞으로 이어질 서울은행 대한생명 등의 매각협상에서는 이같은 전철을
되풀이 해선 안될 것이다.

이제 제일은행이 "세금잡아 먹는 하마"에서 우량은행으로 탈바꿈할수
있을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뉴브리지측에 달렸다.

우리는 뉴브리지가 세계 유수 금융기관들을 투자파트너로 참여시켜 제일은행
을 단시일내에 모범적인 첨단 선진은행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아울러 국내은행들도 보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 등을 통해
외국선진은행에 대항할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제일은행의 해외매각을 관치금융의 종식과 건전금융풍토조성 및
한국금융산업 선진화의 계기로 삼을수만 있다면 이번 거래는 그렇게
"밑지는 장사"만은 아닐 수도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