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간부들은 지난주말부터 사흘연속 이헌재
금감위원장의 질책을 받았다.

이 위원장은 일요일(19일)에도 출근, 일부 국장들을 불러 꾸짖었다.

위원장실에 다녀온 간부들은 얼굴이 벌개질 정도였다.

이 위원장이 이렇게 화를 낸 것은 간부들의 무소신과 복지부동 탓으로
비쳐진다.

이 위원장 자신이 직접 뛴 제일은행 매각 결과를 언론에서 "헐값"으로
몰아부쳐도 간부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파이낸스 사태도 금감원이 관리감독을 잘못해서 피해자를 양산한 것으로
비쳐졌다.

이 위원장의 질책에는 "굳이 내가 나서서 해명해야 하느냐"는 불편한
심기가 담긴 셈이다.

이 위원장은 20일 점심때 예정에도 없이 구내식당에서 들러 기자들을
만났다.

제일은행 헐값매각 시비에 대해 나름대로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미국투자펀드인 뉴브리지와 이번에 맺은 투자약성서(TOI)는 작년말
양해각서(MOU)에 비해 조건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선 제일은행의 자산평가를 국제기준이 아닌 금감원기준으로 바뀌었음
을 강조했다.

또 미래손실보전도 부도난 기업의 여신만 정부가 인수키로 해 그 규모를
최소화한 것도 협상의 공이라고 평가했다.

제일은행의 정상과 요주의여신 평가기준도 장부가대비 87%에서 96.5%로
높였다고 지적했다.

뉴브리지 입장에선 여신할인율(13%->3.5%)이 크게 떨어져 당초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던 수익률을 맞추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제일은행에 투입된 증자지원금 5조7천억원은 주가가 10배
오르면 모두 회수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성업공사의 부실채권 매입(1조1천억원)은 공적자금 투입이 아닌 유동성지원
이라는 해명도 곁들였다.

이 위원장의 설명만 듣고 보면 나름대로 잘된 협상인 것 같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증시상황이나 개별종목주가에 함구하던
그가 주가얘기로 해명에 나선 점이다.

증권주가 1년새 10배이상 뛰었는데 클린뱅크인 제일은행이라고 못 오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주가가 10배 오르면 정부는 고작 투자비를 건지는데 뉴브리지는
5조원을 벌어나가게 된다.

애초부터 국내은행을 사상 처음 해외에 파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었다.

무리하게 팔아야 했고 시한을 정해놓아 우리의 요구조건을 제대로 관철
시키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국민들은 공적자금을 빠른 시일안에 회수할
수 있길 기대할 뿐이다.

또한 미국계 은행이 정부입김에 순치된 대부분의 은행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 오형규 경제부 기자 oh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