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40)씨는 "작가"혹은 "철학자"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는 1년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라는 직함을 스스로 버렸다.

교수라는 직업이 자유로운 철학적 사고를 억압하는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비교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줄곧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선불교, 라이프니츠와 주역을 서로
비교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최근 그는 들뢰즈 철학의 해설서인 "삶.죽음.운명"(거름, 9천8백원)을
출간했다.

올해 초 나온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이어 들뢰즈 철학이 담고 있는
"의미의 논리"를 알기쉽게 풀이했다.

들뢰즈는 영원한 것을 찾으려는 열망으로 시작된 서구의 사유가 변방으로
밀어놓은 "사건" "의미"를 탐구한 철학자.

서양철학사의 주류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등 변하지 않는
"실체"를 추구해 온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나 들뢰즈는 스토아학파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송 등 철학사에서 "야당"
으로 살았던 철학자들의 "사유"에 관심을 기울였다.

서양철학사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공한 그의 철학은 최근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해설을 넘어 선불교나 도가사상과의 비교를 통해 실체보다
사건에 주목하는 들뢰즈 철학과 동양사상 사이의 유사성을 찾고 있다.

스토아철학 들뢰즈 블랑쇼 보르헤스 등을 가로질러 동북아사상의 선과
도가를 연결함으로써 탈주체적 철학의 실천적 맥락을 명쾌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이씨는 들뢰즈가 강조했던 "사건의 존재론"에 함축된 실천적 내용과 이를
어떻게 "선"과 접목시킬 것인지를 파헤치는데 중점을 둔다.

나아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운명과 실천의 개념에 대해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지식인의 실천에 대해 서양의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한국의 전통사상과
선불교 이론을 망라해 해답을 끌어내고 있는 점이 절묘하다.

< 강동균 기자 kd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