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지진으로 무너진 빌딩의 잔해 속에서 엿새만에 살아나온 치펑과
치광 형제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6일째 되는 날 거의 종일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되지 않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동생이 꿈을 꾸었는데, 냉장고 뒤로 가면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냉장고 뒤로 기어가보니 정말로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형제는 그 구멍을 통해 구조대가 보이는 바깥으로 계속해서 걸어 나왔다.

형제에게 출구를 가르쳐 준 그 음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사실 나는 꿈을 아주 소중하게 느끼고 예민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꿈은 엄연한 현실과 마찬가지로 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특히 꿈에서 체험하는 감각의 초현실적인 강렬함이 글을 쓰는 나에게 도움이
될 때가 많았고 몇 날 며칠 전전긍긍하던 문제를 꿈을 통해 상당히 비약적으
로 해결했던 적도 있다.

독일 화학자 케쿨레도 꿈 덕분에 벤젠 원자구조를 알아냈다고 한다.

꿈속에서 뱀이 제 꼬리를 물고 춤을 추는 모습이 어른거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6각형 구조를 규명했다.

꿈은 또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마치 X-레이 사진을 찍듯 단적으로 보여주어
그 속의 위험성이나 기만성 혹은 타인의 정확한 정체나 타인에게 비치는 나의
이미지를 감지하게 해준다.

그런가하면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서도 경고하거나 혹은 미리 성과를 예고해
안심시키기도 한다.

현실에서 간절하게 결핍을 느끼는 욕구를 해소시켜 마음을 바꾸어주기도
하고 심지어 일생동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고통스러운 정념을 하룻밤
사이에 소멸시켜 주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때로 아주 히스테릭하게 매우 일상적인 명령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만 잠을 깨라든가, 밖으로 좀 나가라든가, 물을 마시라든가...

심리학자 융(Jung)은 심오한 연구와 여러가지 구체적인 실례를 통해 인간의
내부에 "자기(self)"가 존재한다고 확인했다.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다이몬"이라고 불렀고 이집트인들은 "바아의 영혼"
이라 불렀으며 고대인도의 신화에서는 "위대한 인간 푸르샤"로 불렀고
나스카피 인디언들은 "내 속의 동반자 미스타페오"로 불렀다.

우리는 산업화와 근대화를 겪으면서 내부의 동반자를 잃고 고립무원의
고아가 되어버렸다.

더구나 현대인은 늘 빠르게 변하는 외부의 자극을 받고 타인의 삶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집단의 윤리와 사회적 통제 아래 욕구를 억압당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위축되고 혼란에 빠져 지낸다.

게다가 내면의 통로마저 꽉 막혀버린 사람은 흡사 눈과 귀를 가린 상태와도
같아서 신경증적 히스테리에 빠지게 된다.

최근에 과학자들은 우주 생성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블랙홀을 찾기 위해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를 보내 우주망원경을 우주공간에 설치했다고 한다.

또 화이트 홀과 타임 머신을 이용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통로인 윔홀을
찾기 위해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외국의 한 패션쇼에서는 모델이 진짜 개처럼 걷고 뛰어놀 수 있는
로봇 개를 선보였다.

그 로봇 개의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우리가 상상했던 로봇은 우리의
창조물이 아니라, 바로 미래의 우리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 개가 대중화되면 애완견들이 재빠르게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처럼 로봇이 대중화되면 인간은 빠르게 사라져 갈 것이고 사라지기 싫은
인간은 로봇의 삶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과학이 바로 이 자리에서 한 걸음도 더 발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 역시 그랬으면 한다.

하지만 과학이 더 발달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멈출 리는 없을 것이다.

과학의 수레바퀴는 인류의 화려하고 비극적인 운명인 것만 같다.

하지만 아주 소박한 마음으로 바라건대, 과학이 발달하는 만큼 인간이
저마다 조금씩 더 본질에 가까워져 내부의 자기, 혹은 다이몬, 바아의 영혼,
위대한 인간 푸르샤, 내 속의 동반자 마스타페오와 친해졌으면 한다.

동물에 대한 복제 실험이 성공하고, 로봇 개가 등장하고, 블랙홀을 먼저
발견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때에 내 속의 동반자를 인정하는
일이 조금도 황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식물이 꽃을 피우듯 인간의 마음은 꿈을 통한 상징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나는 점점 더 세심하게 무의식이 창출해내는 고유의 상징 체계를 해독하기
위해 집중한다.

이젠 많이 친숙해진 자아와의 여행을 계속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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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염소를 모는 여자''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등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