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21세기 21가지 대예측] (9) <4> 매스컬처 [상] '디지털'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021년 10월 1일.

    소설가 구보씨는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 그는 딸 아이로부터 이집트 조각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답을
    제대로 못해 쩔쩔 맸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이집트
    조각상을 불러냈다.

    <> 진정한 문화민주주의 시대로

    조각상에서는 제왕의 품격이 느껴졌다.

    황금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진귀한 유물이었다.

    구보씨는 그 보물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허공에 뜬 3차원의 가상현실(VR)이다.

    상하좌우 생김새며 미세한 특징들이 한눈에 드러났다.

    예전 같으면 귀한 조각품을 직접 보려면 비행기로 현지 박물관까지 날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방에 앉아서도 모든게 가능하다.

    단순히 모양새만 보는게 아니다.

    재질이며 순도, 관련 자료들도 순식간에 알 수 있다.

    직접 손으로 만져보듯 앞에 놓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찬찬이 뜯어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집에 앉아서 모나리자를 보고 유명 작가나 거물 스타들도
    언제든 만날 수 있게 해준다.

    누구나 문화예술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시대.

    다중(Mass)과 문화(Culture)가 만나 시공을 뛰어넘는 매스컬처(Mass
    Culture)의 세기를 연 것이다.

    이는 곧 특정 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문화예술을 모든 사람들이 공유
    하고 참여하는 광장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진정한 ''문화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했다.

    <> 누구나 창작자이면서 수용자

    문화예술의 공급과 수요 개념도 바뀌었다.

    누구나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고 누구나 남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창작자와 수용자가 따로 없다.

    영화만 해도 완성된 필름을 극장에서 일방적으로 보기만 하던 방식에서
    쌍방향 대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문화예술은 시대정신을 가장 예민하게 반영한다.

    예술가들은 컴퓨터의 무궁무진한 능력과 가상현실 세계를 개성적인 관점에
    통합시키면서 문화의 혁명을 일으켰다.

    새 것의 기술을 옛 것의 가치에 적용시키는 흐름이 정착됐다.

    더욱이 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도 무너진지 오래다.

    "퓨전" "하이브리드" 개념에 따라 장르간 혼합과 영역허물기가 가속화됐고
    문화의 발신자와 수용자 사이에도 벽이 없어졌다.

    <> 창조적 유추능력과 카피캣

    홀로그램 앞에서 상념에 잠겨 있던 구보씨는 점심식사후 아내와 딸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미술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물론 집에서 월드와이드웹으로 가상 화상을 통해 하루 종일 작품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실물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한 쪽에는 고전적인 회화작품과 조각이 전시돼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이른바 "진화적 미술"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영국 조각가 라탐이 돌연변이 유발 유전자를 원용한 "뮤테이터(Mutator)"를
    개발한 이래 미국 컴퓨터과학자 심즈의 DNA 기법으로 한 차원 승화된 첨단
    미술세계.

    여기에 사람 마음의 연합과정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본뜬 "카피캣
    (Copycat:유추능력을 가진 흉내내기)" 기법이 가세했다.

    유추는 예술과 과학에서 창조적 능력의 공통적인 원천이다.

    이것을 개발한 호프스태터는 인간의 뇌에 필적할만한 컴퓨터가 나오면
    사람의 창조적 사고과정을 프로그램으로 모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가능한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마거릿 보덴의 표현처럼
    "컴퓨터로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거부하면 우리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수많은 작품들을 잃게 될 것"인지도 모른다.

    <> 모차르트의 42번 교향곡

    햇살이 기울자 구보씨 가족은 전시장 옆에 있는 "뉴런 노래방"으로 갔다.

    구보씨는 마이크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음치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자못 위풍당당하다.

    컴퓨터의 디지털 변환장치를 빌리면 유명 가수 못지 않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 전자기술을 이용한 하이퍼 악기가 등장했고 몸만 움직이면 연주되는
    "제스처 오르간"도 생겼다.

    MIT 미디어연구소에서 만든 특수 악기를 이용하면 바이올린 켜는 법을
    몰라도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연주할 수 있는 세상이다.

    모차르트는 41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그러나 컴퓨터는 모차르트의 42번째 교향곡을 만들어냈다.

    디지털 예술의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일은 10만줄의 컴퓨터 부호를 작성한 끝에 엠미(EMI:음악적 지능의
    실험)를 개발한 미국 작곡가 데이빗 코프에 의해 이미 준비됐다.

    컴퓨터가 모차르트 교향곡 41개를 하나하나 분석한 뒤 42번째 곡을 유추해
    낸 것이다.

    뉴밀레니엄 음악은 오감의 영역을 뛰어넘는 초공감각적 비트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 영상.스토리 자유자재로 클릭

    오후 5시.

    특수화면이 설치된 "밀레니엄 극장"의 영화는 쌍방향 대화형으로 진행됐다.

    딸 아이가 별도 부스 안에서 리모콘으로 스토리 선택 버튼을 연신 눌러대기
    시작했다.

    등장인물과 사건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여자가 남자를 얻을까"라는 대목에서 "예" 버튼을 눌렀고 딸
    아이는 연적을 따돌리는 쪽으로 줄거리를 끌어갔다.

    구보씨도 소설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가며 열심히 스토리 게임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는 21번째 클릭부터 정신없이 달라지는 영화 줄거리를 따라가다가
    결국 버튼 누르는 일을 중단했다.

    이렇게 종횡무진으로 파생되는 스토리의 미로 속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잊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종합예술이라는 영화는 그를 더욱 신비로운
    상상의 세계로 끌고갔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일자 ).

    ADVERTISEMENT

    1. 1

      [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파격을 짓다…영감을 자극하고 욕망 깨우는 건축

      ‘건물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그 생각의 근원이 신의 계시로까지 연결된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신의 지시가 아니라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지성으로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있다. 인지학의 아버지이며,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이자, 유기농법을 알린 농업자이며, 괴테아눔이라는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이기도 한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다. 직선 버린 설계…영감의 결과물그는 1925년 괴테의 세계관을 연구하는 본부 건물인 괴테아눔을 지으면서 기존 목조건물이 화재로 소실됐지만, 그 슬픔이 새로 짓는 건물에 영적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허위적 목적에 오염되지 않은 지성의 결과물로서 디자인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건물에는 직교하는 직선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콘크리트를 목조 건축물처럼 기둥과 보로 연결하면서도 벽돌 건물처럼 아치를 뒀고, 거푸집 모양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콘크리트 성질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다. 오직 인간의 지적 영감에 의해 형태가 만들어졌고, 결과적으로 거대한 두꺼비같이 울퉁불퉁한 덩어리를 가진 독특한 건물이 됐다. 그리고 기이해 보이는 형상은 다시 사람들에게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제가 됐다.두터운 지붕과 벽체는 내부에 무언가 귀중한 것을 담고 있을 듯한 느낌을 주고, 모양이 다른 창문들은 사람의 보는 눈이 다 다름을 암시하며, 투박한 노출 콘크리트는 원래 그렇게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점잖은 괴물’ 닮은 포스트모던식 건물인간지성의 과정을 통해 기이한 형태를 만들어 내고, 또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거꾸로 영

    2. 2

      [김영수의 디코드 차이나] 딥시크 쇼크 1년, 중국의 다음 10년

      “딥시크 R1은 인공지능(AI)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다.”미국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이 지난해 1월 27일 X에 남긴 말이다. 딥시크(사진)가 챗GPT를 제치고 애플 앱스토어 1위에 오른 그날, 엔비디아 주가는 17% 급락했다. ‘딥시크 쇼크’는 미·중 패권 경쟁의 판도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해 4월 이후 미국의 관세 공세에 대부분 국가가 협상 테이블로 향했지만,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불을 놨다. 10월 미·중 회담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승리로 평가된다.불과 1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차이나 피크’ 론이 우세했다. 성장률은 둔화했고, 미국의 압박 속 고립은 깊어졌다. 한국에서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탈(脫) 중국이 대세였고, 반중 감정은 계속 커졌다. 그래서 ‘딥시크 쇼크’는 더 충격이었다. 경제 모델의 대전환그 이면에는 경제 모델의 대전환이 있었다. 2010년대 중반, 부동산·인프라 투자 중심 성장 모델은 한계에 봉착했다. 경제학자들은 소비 부양을 제시했지만, 중국은 소비 대신 생산을 택했다. 2014년 서방의 대러시아 기술 제재가 계기였다. 2015년 리커창 총리는 “연간 수백억 개의 볼펜을 만들면서도 볼펜 심은 수입한다”고 토로했고, 같은 해 ‘중국제조 2025’ 전략이 발표됐다. 10대 전략 산업의 기술 자립에 국가 역량을 집중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딥시크 쇼크’는 이 전략이 유효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2024년 글로벌 제조업 부가가치의 30%를 차지했다. 전기차의 72%, 배터리의 69%, 산업용 로봇의 54%가 중국산이다. AI 특허 비중은 60%

    3. 3

      [박재항의 소소한 통찰] 정답 대신 해석의 여지 남기는 광고로

      ‘착하게 살자.’교도소에서 출소한 폭력배의 팔뚝에 새겨져 화제가 된 문신, ‘차카게 살자’의 원형이다. 굳은 갱생의 의지보다는 주로 희화화해 쓰이는 이 문장을 새해 첫 달 한국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BE GOOD.’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난 11일 열린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많은 배우들이 이 문장이 새겨진 배지를 의상 위에 달고 나왔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에 맞아 숨진 여성 르네 굿(Reene Good)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 문구는 한국 뉴스에서 대부분 ‘착하게 살자’로 번역됐다. 완전 오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착하게 살자’라는 문구가 어떻게 쓰여 왔는지 고려한다면 약간 아쉽다. 게다가 ‘BE GOOD’이 나온 맥락을 생각한다면 다르게 해석해 볼 필요도 있다.총격으로 숨진 이의 성(姓)이 ‘Good(굿)’이다. 그럼 ‘굿이 되자’는 해석도 가능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젊은 우파의 대표격이었던 찰리 커크가 작년 9월 피살된 직후, 지지자들은 ‘We are Charlie Kirk(우리가 찰리 커크다)’란 문구를 외쳤다. 그들은 이 문장을 노래로도 만들고, 배지에 새겼다. 같은 맥락에서 굿을 희생자로 추모하고자 ‘BE GOOD’이란 문구를 만들었을 수 있다.배지에 쓰고, 구호로 외치는 이런 문구는 광고의 슬로건이자 카피의 일종이다. 명료한 하나의 뜻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카피가 있는가 하면 여러 뜻으로 해석이 가능한 중의적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직접 경험한 광고주 대부분은 장점을 명료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걸 선호했다. 확실한 해답은 자신감과 소비자를 위한 배려일 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