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이 10억달러의 DR발행을 무기 연기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14일부터 한달여에 걸쳐 진행된 현지로드쇼(투자설명회)도 무위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외환은행의 DR발행 연기는 당장 내주부터 로드쇼에 나설 예정이었던
조흥은행(10억달러)이나 한미은행(4억달러)의 해외자금 조달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해외증권시장의 최근 동향을 보면 외환은행의 DR발행 연기는 이해하지
못할바가 아니다.

우선 미국증시가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금리도 상승추세다.

미 국채(TB)30년물은 최근 연6.10%까지 올라있고 뉴욕다우지수는 10,000
포인트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증시 불안도 겹쳐있다.

지난달 한빛은행과 현대자동차 DR를 매입한 외국투자자들은 서울에서 원주가
폭락하면서 대규모 평가손실을 보고있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한빛은행은 20%, 현대자동차는 15%라는 적지 않은
할인율로 사들였는데도 바로 손해를 안게 되었으니 누구라도 한국물에 대해
선뜻 매수주문을 내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또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DR발행 기업들 스스로가 DR가격은
물론 국내증시조차 하락세로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계 DR는 올들어 지난달까지 63억8천만달러어치가 발행됐다.

이는 외화위기 발생 이전인 지난 96년 11억5천만달러의 5배가 넘는 큰 물량
이다.

원화로 따져도 7조5천억원이 넘는다.

이처럼 해외 한국물이 홍수처럼 쏟아지다 보니 가격결정권은 매입자측인
외국투자자들에게 넘어가게 마련이고 대 한국 투자한도를 일시에 늘릴 수
없는 외국인들은 서울에서 기존 보유주식을 팔아 이 대금으로 헐값의 DR를
선별적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DR발행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 해외에서의 DR가격 하락은 물론
이고 외국인 주식매도와 이에 따른 주가하락을 연쇄적으로 촉발시켰다는
분석이다.

물론 은행이나 기업들이 이같은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외자를 조달해오지 않고는 당장 감독당국으로부터 호통을 들어야
하고 부채비율 2백%에 쫓기는 기업들도 무리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점이 있다.

한국 주식을 사들일 만한 외국 투자처가 뻔한 터에 외자조달을 지상과제
식으로 추진한 결과가 외국인 주식매도와 주가하락, 궁극적으로는 해외자금
조달 자체까지 보틀넥에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BIS비율이나 부채비율등 숫자목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전략적으로
해외시장에 접근할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