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11개 상임위 국정감사가 계속된 6일 오전 10시, 정부 각 부처 국감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한나라당이 "중앙일보 사태"로 언론탄압 규탄대회를 열겠다며 국감장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반 순항하던 국정감사가 또다시 "정치공세의 장"으로 변질된 현장들이었다

당초 이번 국정감사는 시민단체들이 모니터에 나선데다 내년 총선을 겨냥해
의원들이 성실한 준비태도를 보여 어느때보다 기대를 모았다.

여야는 시작전 "이번 국감은 정책감사로 펼치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난 5일 문화관광위에서 야당이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구속에 따른
언론탄압 시비끝에 국감을 거부하면서 파행이 시작됐다.

야당이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출석시키지 않으면 국감을 진행할 수
없다고 버틴 때문이다.

법사위도 이날 중앙일보 사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해 정회를 거듭하는등
국감이 2시간여동안 지연됐다.

급기야 6일에는 모든 국정감사가 순연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다른 국감장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이 속출
하고 있다.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은 5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출석시킨 정무위 국감
에서 안건과 별개문제인 정치자금 얘기를 꺼냈다.

정무위는 또 계좌추적문제를 다루느라 금융및 기업 구조조정등 핵심사안은
제대로 짚지도 못했다.

조홍규 국민회의 의원은 법사위에서 상대방에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계속해 국감장을 정쟁으로 몰아갔다.

"노근리 사건"의 현장조사에 나선 행정자치위는 건성으로 일관하다 유족들의
항의를 받았다.

일부 의원들은 정책질의는 뒷전인채 지역구 현안만을 물고 늘어져
"속보인다"는 눈총을 받았다.

정책감사는 실종되고 여야간 정치공방만 주고받는 구태가 재연되자 의원들의
추궁에 대비해 긴장하고 있던 공무원들이 실소하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지난 88년 부활된 국정감사는 예산심의와 함께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최근 국정감사를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은 "청문회 무용론"에 이어
"국정감사 무용론"마저 들먹이고 있다.

대부분 상임위가 매끄럽게 진행됨에도 일부 상임위와 의원들의 이같은
"돌출행동"이 전체 국감의 의미를 빛바래게 만든 탓이다.

재벌 기업인들이 증인 출석을 거부하자 의원들은 "국회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라며 발끈했는데 이들의 행위가 과연 그들만의 책임인지 곰곰이
새겨봐야할 때다.

< 정태웅 정치부 기자 reda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