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을 묶어놓고 권투시합을 하라는 것과 같다"

건설교통부가 7일 발표한 주택청약예금 개선방안에 대한 한 은행 관계자의
반응이다.

은행들은 발표내용에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건교부의 방침을 보면 주택은행의 독점을 깨겠다는 것인지 반대로
독점을 계속 유지시켜주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일단 다른 은행에 청약예금을 가입할 수 있는 시기가 내년으로 늦춰진 것을
들수 있다.

반면 청약예금 가입자격 확대 등 다른 정책은 12월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오는 12월부터 1가구 1통장이던 청약예금가입조건이 1인 1통장
으로 바뀐다.

가입자격이 확대되는 12월이 되면 신규고객은 자연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시중은행이 청약예금을 취급할 수 있는 시점은 내년부터다.

신규고객이 폭주할 12월 한달은 주택은행을 위한 독무대로 마련해준 셈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왜 유독 취급금융기관을 확대하는 것만 내년으로 늦춰졌는
지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실제로 은행들은 올초 건교부로부터 하반기에 업무를 허용할테니 준비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이에따라 은행들은 전산프로그램을 만들고 인력도 배치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제나 저제나 관련규정이 고쳐지기만 기다려왔다.

그런데 건교부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실시시기를 내년으로 미뤄버렸다.

청약예금을 은행간에 이전할 경우 가입기간을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결국은 무산됐다.

다른 예금상품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게 건교부의 논리다.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청약예금을 옮기더라도 기존 가입실적을 인정해주면 은행간 경쟁이 활발해
진다.

예금금리는 물론 아파트당첨이후 주택자금 대출금리도 경쟁이 붙을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건교부는 소비자 입장을 무시했다.

이를 두고 금융계에서는 "건교부가 20여년동안 밀월관계를 맺어온 주택은행
을 봐준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정부가 당초 주택은행의 독점을 깨겠다고 나선 것은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였을 터이다.

하지만 시장진입 장벽을 푼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눈가리고 아옹하는"식의 정책은 그만둘 때다.

< 김준현 경제부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