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이야기 중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발자국이 싫어서 그것으로부터 떨어지려고 달린 자가
있었소. 그러나 발을 들어올리는 횟수가 잦으면 잦을수록 그만큼 발자국은
많아지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소. 그래서
아직 느리게 달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더 빨리 쉬지 않고 달리다가 힘이
빠져 죽고 말았소. 그 사람은 그늘에 있으면 그림자가 없어지고, 멈추어
있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거요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오!" (장자, 잡편 어부중에서)

모래사장을 내려다 본다.

언제나처럼 모래사장은 밤새도록 운 얼굴을 하고 있다.

밤에 들어온 물이 아침에 나가므로 군데 군데 개울이 남아있고, 모래들이
젖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것이다.

몇사람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고층 아파트다 보니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그림자를
하나씩 업고 있다.

사람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달리는 형국이다.

장자의 이야기가 어느때보다 가슴에 닿아온다.

누군가 우리를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이가 있다면 우리의 달리는 모습도
그렇지 않을까.

모두 그림자를 달고 달리면서 그림자를 떼어버리려고 애쓰는 형국...

그림자는 우리의 욕망일 것이다.

달리고 달려도 없어지지 않는 욕망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욕망이 있기에 성취가 있는 것이니까 우리 욕망은
결핍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결핍의 욕망.

하긴 이 말은 현대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이론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장자의 말처럼 "잠시 그늘에 서 있음으로써" 그림자로부터
떨어지려고 애쓸 게 아니라, 그림자를 향기롭게 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수평선을 바라보니 "아, 그 말이 옳소, 옳소"라고 수평선이 화답을 한다.

"당신은 그림자가 있어야 하오. 영원히 당신으로 부터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가. 당신의 인생은 그 그림자의 성취로 더욱 향기로워질 것이오..."

그림자는 꿈을 꾼다.

결핍의 꿈을 안은 그림자는 그늘의 저 쪽까지 향기를 풍긴다.

아, 당신의 그림자로 하여금 향기를 풍기게 하라.

당신을 따라서 저 모래사장을 끝없이 달리게 하라.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