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지표상 호전에 너무 들떠 있다. 미식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무엇이
좋아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8일 오후 서강대학교 김대건관에서 열린 "재벌개혁을 평가한다"는
주제의 경제현안 토론회에서 정운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대통령이
한마디하면 고위관료들이 충성 경쟁이라도 하듯이 여러 정책을 제시하지만
그 정책들이 점검된 적은 없다"며 "무엇을 보고 재벌개혁 등이 잘 진척되고
있다고 하는지 모르지만 한국경제는 여전히 비상상태다"라고 진단했다.

한국경제신문 후원으로 서강대 경제대학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재계
와 정부, 학계 관계자들은 우리 경제의 현주소와 정부정책에 대한 진단과
평가에 있어 큰 시각차를 보였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유한수 전국경제인엽합회 전무는 "결합재무제표 도입 등
재벌의 구조조정은 금융 노동 공공부문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며 "정부가 시한을 정해 놓고 너무 재촉하거나 기업의 자율에 맡겨도 될 일
까지 세세히 간섭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입장을 대변한 이근경 재경부 차관보는 "재벌의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채권단과의 합의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구조조정 원칙에 순응한
기업은 재무구조도 건실해지고 주가도 오르는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맞받았다.

시장실패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정부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임동승
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은 "대통령의 경제관은 확실하지만 대통령 1인의
리더십에 의한 의사결정이 문제를 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이근경 차관보는 "대통령은 (경제에 관해) 탁월하며 대통령이
속속들이 아는게 모르는 것보다 낫다"며 우회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
비교했다.

정운찬 교수는 "정부가 전지전능하지 않지만 위기상황에서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가"라며 "시장의 압력만으로는 부족하므로 그나마 사고의 폭이 넓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시장실패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해 정부의 재벌
정책기조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부채비율 2백%를 연말까지 맞추라는 정부의 요구도 논란거리였다.

임동승 전소장은 "부채비율이 2백%가 안되면 CP 발행도 어려울 것이라는
이헌재 금감위원장의 말은 가히 혁명적"이라면서 "기업의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환경 조성에 우선 힘써야 할 것"이라고 정부정책의 조급성과
즉흥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계민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도 "부채비율을 낮추는데 있어 기업들의 업종
특수성을 무시한 단일 지표 적용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 차관보는 "부채비율이라는 단일지표에 매달리는 위험을 잘 알고 있다"며
"내년 이후에는 채권은행의 자발적인 판단하에 탄력적으로 부채비율을 적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응했다.

그러나 그는 산업은행의 설비자금 40%가 투자처를 못찾고 있는 상황을 예로
들며 "돈은 풍부한데 내실있고 합리적인 투자를 하라니까 못한다"고 기업들
을 비판했다.

또 "경제의 활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GDP대비 35%에 이르는 과거의
투자율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며 "25%정도 투자하고 5%의 성장을 이어가는
안정성장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대우사태 등 현재의 불안한 경제상황에 대해서 토론 참석자들이 한결같은
우려를 나타냈지만 이 차관보는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다"며 대우문제
처리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물가압박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정운찬 교수는 "저금리와 통화방출에 따른 M2의 증가량이 35%나 된다"며
인플레를 우려했다.

< 박민하 기자 hahah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