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심지어 외국의 한 영어사전은 Chaebol(재벌)이라는 단어에 대해 "한국에만
존재하는 기업결합체로 총수 또는 그 일가가 소유하고 경영하는 사업조직"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전의 정의는 명백한 오류다.

가족중심의 기업체제는 대만,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도 매우 보편적인 기업형태다.

특히 화교계 재벌들은 아시아의 유력한 재벌 가운데 약 50% 이상을 차지
하고 있다.

아시아 위기로 큰 타격을 받긴 했지만 아직도 화교재벌들은 막대한 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재산규모가 5억달러가 넘는 화교기업인 만도 1백여명에 달할 정도다.

그중에도 최고의 갑부로는 홍콩 헨더슨부동산 회장인 리자오지가 꼽힌다.

미국의 포브스지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 4백대 갑부랭킹에서 리 회장은
1백27억달러의 재산으로 세계 9위를 차지했다.

리 회장에 버금가는 화교재산가는 역시 홍콩의 부동산재벌인 궈빙샹이다.

신홍치 부동산 발전공사를 운영하는 그의 재산은 1백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화교재벌은 쳉콩그룹의 리카싱(69) 회장이다.

개인재산 만도 6백억 홍콩달러(약 10조원)에 달하는 리 회장은 특히 중국
지도층과의 깊숙한 친분관계로 잘 알려져 있다.

리 회장이 소유한 청콩실업과 허치슨 왐포아, 홍콩전기 등 3개 그룹의 총
자산은 3천2백50억 홍콩달러로 지난 5년동안 홍콩 화교재벌 랭킹 1위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내 최대의 화교재벌은 살림그룹 창업주인 린샤오량으로 재산이
80억달러에 달한다.

린 회장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로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항일 독립투쟁을 벌일 당시 독립군에 보급품을 전달하면서 끈끈한
연을 맺었다.

말레이시아 쿠억그룹의 궈허녠 회장도 7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보유한
말레이시아 최대의 재벌이다.

쿠억그룹은 부동산 개발에서부터 호텔 등 레저산업에까지 폭넓은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보통신 등 첨단분야에까지 영역을 확장중이다.

태국에서는 CP그룹의 셰중민 회장이 최대의 화교재벌로 꼽힌다.

사료사업과 부동산 개발로 긁어모은 그의 재산은 약 70억달러에 이른다.

그러면 왜 유독 아시아에서 재벌체제가 번성하게 됐을까.

일본학자인 이노우에 류이치로씨는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민족적 전통이나
가족들간의 연대관계가 강력한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즉 재벌은 기업소유 및 경영의 아시아적 구조라는 것이다.

이와관련 유럽국가중에서도 아시아와 비슷한 혈연정서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
에 재벌형태와 비슷한 가족기업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