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한국경제신문 창간 35돌을 맞아 11일 청와대에서 류화선
편집국장과 특별회견을 가졌다.

김 대통령은 회견 내내 진지한 어조로 "방심하면 언제든지 위기를 다시
맞을 수 있다"면서 국민들의 분발을 다시한번 촉구했다.

"샴페인을 미리 터뜨려선 안된다"고 했다.

철저한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갖춰 21세기를 맞자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다가오는 21세기는 변화의 시대"라며 "이에 걸맞게 우리
기업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고 경영투명성 확보와 업종전문화 등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공생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걸 강조하는
대목에선 ''어린이를 품에 안고 가듯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김 대통령은 세계경제 흐름에서부터 남북관계 문화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에 대해 줄곧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설명했다.

회견 내용을 간추린다.

[ 대담 = 류화선 < 편집국장 > ]

=======================================================================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예상보다 빨리 극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선 IMF체제 이전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등 방심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IMF로부터 빌려온 1백35억달러의 긴급 지원자금을 1년반만에 모두
갚았습니다.

일단 큰 고비를 넘기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초를 잡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안심할 때는 아닙니다.

방심하면 언제든지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일부 국민들이 불필요한 해외관광에 나서는 등 다시 과소비 풍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들 스스로 이런 일을 자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경제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고 고비를 넘겼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IMF 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장기 비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께서 그리는 21세기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경제.사회상은 어떤
것입니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것은 단순히 세기가 바뀌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그동안 인류탄생, 농업혁명, 도시국가건설, 사상혁명, 산업혁명 등
5번의 혁명을 이뤄 왔습니다.

이제 여섯번째인 지식혁명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에 대비하려면 경제 주체 모두가 창조적인 머리와 균형된 사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21세기의 아젠다는 "창의와 속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경제신문은 이를 주제로 집중적인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만.

"아주 시의적절한 기획입니다.

지식혁명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기업인등 경제주체의 창의가 필수적입니다.

창의만이 기업과 국가를 성공의 길로 인도합니다.

빛의 속도로 정보가 전달되는 새 밀레니엄엔 특히 그렇습니다"

-최근 GE사 잭 웰치 회장을 접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외국 기업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무엇보다도 기업 경영의 투명성입니다.

그들은 세금을 포탈하거나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습니다.

투명한 경영을 하기 때문에 국제 신용도가 높습니다.

또 경쟁력을 집중시키고 어린이를 품에 안고 가듯이 중소기업과 공생하려는
자세도 배울 점입니다"

-취임때부터 추진하신 개혁정책도 그런 취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특히 세계는 지금 우리의 재벌 개혁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팔거나 문을 닫아야 합니다.

기업의 소유구조 개편과 재벌개혁은 "하라"고만 하고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사안입니다.

내부자 거래와 재무제표 분식을 통해서 회사 경영 상태를 속이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기업주가 능력이 없다면 이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에게 경영을
맡겨야 합니다"

-정부는 연내에 재벌 개혁을 마무리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내년 이후 재벌 정책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재벌 개혁의 목표는 한마디로 건전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추진해온 재벌 개혁은 과거의 잘못된 경영 구조를 혁파해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기업의 체질을 튼튼하게 바꿔 결국 기업 자신에 이익이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경제의 발전을 이끌어 가도록 하는 것이 정부가 재벌에
바라는 바입니다.

정부는 이런 목표를 가지고 올해말까지 재벌 개혁을 완수할 겁니다.

내년부터는 선진화된 경영체제 하에서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계획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 부문 개혁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어려워도 해야 합니다.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모두 4만4천명을 감축했습니다.

23개 공무원 교육기관이 10개로 통폐합되기도 했고요.

앞으로는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이나 행정 서비스와 같은, 일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분야를 개혁하는데 더욱 역점을 두겠습니다.

공기업 매각과 경영 혁신도 차질없이 진행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IMF체제 이전인 97년 대통령께서 지은 "시민경제 이야기"에서 한국의
바람직한 주가수준은 1,500선이라고 하신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보십니까.

"대통령인 저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대부분 외국 연구기관들은 "한국의 주가가 내려갈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기업이 흑자를 내기 시작한데다 물가와 노사관계가 안정돼 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1,100선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우사태의 해결이 늦어지자 증시에선 11월이 되기 전에, 늦어도 내년
총선 전에는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험한 소리마저 나돌고 있습니다.

한 때 "11월 위기설"도 나돌았고요.

"위기설은 이전에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아자동차보다 6~10배나 큰 대우사태가 터졌는데도 주가는 800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금리도 안정돼 있고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할 때 은행 투신사 등 어느 하나 온전한 것이
있었습니까.

지금은 그런 것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과정입니다.

대우도 연말까지는 가닥이 잡힐 것입니다.

대우 문제로 주식시장의 안정이 깨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내년에는 경상수지 물가 성장률 등 거시지표가 모두 올해보다 나빠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부분적으로 어려움이 있겠으나 전반적으로는 올해의 호조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상수지는 경기상승에 따른 자본재 수입증가 등으로 흑자규모가 다소
줄어들 것입니다.

물가는 선진국 수준인 3% 선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노력이 차질없이 진행되면 내년에도 5~6% 수준의 건실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경규에서 스필버그까지"란 저서에서 대통령께선 "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문화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 정책을 듣고 싶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 문화정책의 핵심입니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풀고, 지원은 대폭 강화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문화의 창조적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입니다.

내년 문화예산을 처음으로 전체 예산의 1%가 넘게 편성한 것도 그 일환
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이라는 커다란 상황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 특히 경협문제는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이십니까.

"상황변화를 긍정적으로 지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게 되면 국제사회의 일원
으로 책임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원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더욱이 최근 미.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된 미사일 협상타결은 우리의 일관된
포용정책이 가져온 의미있는 성과입니다.

이 점에 비춰봐도 햇볕정책은 최선의 정책입니다.

북한도 서서히 햇볕정책을 인식하는 것 같고요.

남북경협의 경우 위탁가공교역을 더욱 활성화하겠습니다.

우리 기업의 대북 투자진출을 촉진시켜 나가고 남북간 물류비용을 절감하는
방안도 적극 강구해 나갈 예정입니다"

-오는 11월 세계무역기구(WTO) 연차 총회에서 본격 논의될 밀레니엄라운드
에 대한 대책도 궁금합니다.

"WTO 각료회의는 21세기 무역질서를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아직 협상의 범위가 정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농업 분야에서는 점진적인 자유화가 이루어질수 있도록 노력하되 공산품
이나 서비스 분야에서는 호혜적인 입장에서 시장개방에 적극 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동부가 새로운 노사문화 창달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몇 년전부터 주도하고 있지만 노력만큼 성과는 크지
않습니다.

신노사 문화의 정착을 위한 방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신노사문화 정착을 위해서 한국경제신문이 노력해 오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사가 서로 불신하고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기업이 살아나기 힘듭니다.

나라경제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기업주와 노동자가 고통도 함께
하고 성과도 같이 나누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경제신문이 계속 노력하고 지원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중의 하나가 정치개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치권의 관심은 선거구제 조정에 모아지고 있는데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의 공천물갈이 폭도 관심입니다.

"선거구제 문제는 여야나 정치인 개개인의 이해를 떠나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대승적 차원에서 숙고돼야 합니다.

현재의 소선구제로 총선이 치러지면 전국이 또다시 지역감정에 의해 5~6개
의 지역정당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치발전도, 국정안정도, 효과적인 개혁추진도 무망한 일이
되고 맙니다.

정치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저비용.고효율 정치의 실현과 지역주의
극복이라고 볼 때 중선구제와 정당명부제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실현
해야 할 과제입니다.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문제는 현재까지 정해진 바 없습니다.

거듭 밝혀온 바와 같이 의정활동과 선거구에서의 신망, 그리고 당선 가능성
등 3가지 기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정리=김영근 기자 ygkim@ >

-----------------------------------------------------------------------

[ 요즈음 김 대통령은... ]

김대중 대통령은 외부행사에 참석할 때 분장을 하지 않는다.

언론과의 인터뷰때도 마찬가지다.

TV화면이나 신문사진이 잘 나오도록 하기 위해 "가볍게" 화장하는 것마저
거의 생략한다.

안동 도산서원을 찾았을 때나, 인천 지하철 1호선 개통식에 참석했을 때,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육.해.공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에서 치사를 할
때, 한경과 가진 특별회견때도 그랬다.

청와대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외부 행사에 자주 참석하면서도
젊은 사람 못지 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예전엔 TV카메라와 사진
기자를 의식해 약간의 분장을 했으나 요즘엔 분장이 필요없을 정도로 혈색이
좋다"고 귀띔했다.

IMF 관리체제 극복으로 이젠 마음의 여유도 찾은 듯하다고 한다.

지난주엔 자동차로 청와대 경내를 이동하다가 갑자기 차를 세워 길옆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를 감상하기도 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는 코스모스를 유난히 좋아하는
''대통령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여전히 바쁘다.

독서광으로 정평이 나있는 대통령이지만 민본주의를 깨닫게 해준 책이라며
읽고 또 읽던 맹자어록집도 요즘은 가까이할 여유가 없다고 한다.

분 단위로 짜여진 일정 속에서 가족들과 식사하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사생활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