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이를 "재벌해체"로 보도해 색깔논쟁으로 번진 적이 있다.
이에 이기호 경제수석은 이렇게 해명했다.
"재벌의 소유구조에 손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재벌개혁은 개별기업이
독자적으로 경영활동을 할 수있는 경영지배구조를 스스로 만들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소유구조를 유지하되 개별 기업이 독자경영하는 구조"란
어떤 것일까.
이 문제는 비단 재벌개혁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정책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다.
기업은 생래적으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아" 다각화하려는 본능을 지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중소기업 규모로 출발한 기업이 다각화를 통해 그룹형태를
취하게 되는 "기업집단화 현상"은 지금도 산업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의료기기 및 소프트웨어 전문그룹인 메디슨의 "네트워크형
구조"는 그 해답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메디슨은 현재 22개의 가족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대부분이 분사를 통해 세워진 계열사들이다.
이 회사의 이민화 회장은 "직원수가 일정범위를 넘어서면 조직이 관료화
되기 마련"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들 계열사들은 모기업의 문화와 시스템은 공유하되 의사결정은 독립적
으로 한다.
이같은 네트워크형 구조를 취한 국내기업으로는 메디슨외에도 한샘,
미래산업, 퍼시스 등이 있다.
해외기업중에서는 일본 소니사가 대표적인 네트워크형 구조다.
일본 소니 본사는 디자인과 설계에 집중할 뿐 더이상 제품생산을 하지
않는다.
생산은 국내에 자회사를 만들어 일임한다.
이 자회사는 싱가포르의 소니 자회사를 통해 동남아에 산재한 생산기지들을
관리한다.
미국이 전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멀티미디어 통신분야는 미국 자회사를 통해
전담케 한다.
소니의 미국 자회사는 퀄컴사와의 합작투자를 통한 무선통신사업, CBS레코드
와 콜럼비아 영화사의 인수를 통한 영화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집단이 진화할 수 있는 또다른 형태는 연방형 경영조직이
제시되기도 한다.
연방형 경영구조는 <>의사결정권이 점진적으로 그룹내 계열사에게 대폭
이양되고 <>그룹내 계열사들은 몇 개의 전략적 단위별로 책임경영을 수행하며
<>자본관계를 맺고 있는 기존 계열사 외에도 정보와 인적자원면에서 관계가
있는 기업을 포함시킨 조직이다.
그러나 전체그룹 차원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그룹 "전략본사의 조정
기능을 인정하는 체제다.
''전략본사''는 그룹 브랜드가치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
인도의 타타그룹은 계열사가 그룹의 브랜드네임을 사용하기 위해 만족시켜야
만 하는 일련의 품질기준과 사업가치를 규정하고 계열사들이 이를 유지하는지
정기적으로 감시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전문지식과 경영노하우의 컨설팅도 이뤄진다.
이밖에도 마이클 포터 교수가 얘기한 전략적 기업집단의 제유형중에서도
진화의 방향을 찾아볼 수 있다.
구성기업간 고정적, 계속적 거래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전략적 기업집단은
관계회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와 자본출자 관계가 없는 경우가 있다.
이중 자본출자 관계가 없는 기업집단은 각 기업이 독자적 의사결정에 따라
행동하나 거래 만큼은 구성기업간에 고정적이고 계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집단내에 준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제도개선도 필요조건
이라는 점이다.
여건은 무시하고 기업에게 변화만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지주회사 제도다.
지주회사 설립은 기존의 그룹들이 상호출자관계를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의 지주회사 설립요건(지주회사 자체 부채비율 1백%, 자회사
지분 50%이상 보유 등)은 지나치게 엄격해 기업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정책은 기업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다시한번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다.
< 박민하 기자 hahah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