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파트 분양시장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2순위 청약에서 미달된 아파트가 3순위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기현상이
생기곤 한다.

1순위에서 팔리지 않은 아파트가 장기 미분양으로 남던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이다.

말하자면 3순위에서 "싹쓸이 청약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3일부터 분양이 시작된 경기도 용인 수지 금호베스트빌 67평형
2백24가구의 1,2순위 청약자는 5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15일 실시된 3순위청약에선 무려 3천1백여명의 수요자가 접수했다.

지난 9월초 경기도 안산 고잔에서 분양된 대우아파트 4백43가구도 1,2순위
에선 1백80여명이 청약했지만 3순위에선 1천4백여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역시 안산 고잔에서 비슷한 시기에 1천2백여가구가 공급된 대림아파트도
1,2순위에서 1백여명이 접수하는데 그친데 비해 3순위에선 1천3백여명이
청약했다.

3순위청약에 나서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주택업계에선 실수요자들도 일부 있겠지만 대부분 가수요자들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 가수요자 중엔 "떴다방(이동부동산업소)"을 중심으로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을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1순위는 청약통장에 가입한 지 2년 이상, 2순위는 6개월 이상이 지나야
자격을 얻을 수 있지만 3순위는 가입 즉시 청약자격이 주어진다.

마음만 먹으면 분양공고가 나간 후 통장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3순위청약은 계약률이 낮다는 점에서도 "투기의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3순위청약 아파트의 계약률은 높아야 50%, 심한 경우엔 10% 이하로
떨어진다.

3순위 청약자들이 대부분 일단 청약해 놓고 상황을 봐가면서 계약을
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탓이다.

청약한 아파트에 프리미엄이 붙을 것같으면 계약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포기하려는 심산이다.

계약을 포기한다 해도 "3순위통장만 날리면 그만이니까" 손해볼 게 별로
없다.

필요하면 다시 만들면 되는 통장일 뿐이다.

이같은 가수요자들의 존재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집이 필요해서 매입하는 게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여전하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올 봄 청약열기를 주도했던 경기도 구리토평지구 아파트는 그동안 40% 이상
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용인에서 지난 1년동안 분양권이 전매된 아파트가 40~50%에 달한다는 소문도
떠돈다.

당첨자의 상당수가 웃돈을 챙기고 떠나는 가수요자들이라는 증거다.

분양권을 사는 사람들 중에도 가격의 추가상승을 기대하는 가수요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잘라 말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요즘 주택시장은 가수요자들이 주도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가수요자들의 중심엔 떴다방이 있다.

인기있는 지역에서 분양되는 아파트 견본주택엔 예외없이 떴다방이 진을
치고 공공연하게 활동한다.

견본주택에 주택업체들이 고용한 도우미가 필요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도우미의 역할을 떴다방들이 대신하고 덤으로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버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엔 떴다방이 활동하는 지역 아파트라야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들의 존재가 투자의 지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떴다방의 수법도 날로 대담해지고 있다.

분양권을 싸게 산 후 웃돈을 붙여 되파는 것은 이제 "고전"에 속한다.

청약통장을 수십개씩 확보해 단번에 수억원의 차익을 챙기는 기업형
떴다방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예 분양담당자를 찾아가서 분양권을 주면 분양률을 높여주겠다고 담판을
벌이기도 한다.

현실이 이런데 주택을 투기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원칙론만 내세울 수는
없다.

투기바람이 불때마다 국세청을 동원해 떴다방 몇명을 잡아들이는 처방도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반복되는 땜질처방은 오히려 투기꾼들의 저항력만 키워줄 뿐이다.

가수요가 웬만큼 끼어있어야 주택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3순위에 청약자들이 대거 몰려들고, 분양된 지 1년도 안된 아파트의
반 가까이가 분양권을 통해 매매되는 시장은 정상이 아니다.

이런 비정상적 시장은 선의의 주택수요자들을 잠재투기꾼으로 만든다.

"한건"하지 않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게 요즘 주택수요자들이다.

집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가수요자들에게 밀려 분양받을 기회를 잃는다.

정상이 아닌 것은 정상으로 되돌려져야 한다.

거창하게 사회정의를 들먹일 것도 없다.

집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적당한 값에 살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이처럼 왜곡된 주택시장을 정상화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 jh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