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PC통신에서는 대규모 "사이버 데모"가 열렸다.

수천명의 네티즌들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음식점을 맹렬하게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다.

"신지식인으로 뽑혀 청와대까지 다녀온 사람이 그럴수 있느냐"

"친절하단 얘긴 헛소문이었단 말이냐"

"불매운동을 벌여 혼줄을 내줘야 한다"..

게시판엔 분노에 찬 글이 수백건이나 올랐다.

천리안에서 시작된 시위는 하이텔 유니텔 등으로 번졌다.

문제의 음식점은 탤런트 K모씨가 운영하는 여의도의 한 고깃집.

음식 맛이 좋고 친절하다고 소문나 평일에도 자리를 잡으려면 10~20분씩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지난 8월 지배인이 손님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부어 말썽을
일으켰다.

봉변을 당한 손님은 다음날 천리안에 자신이 겪은 일을 폭로했고 이 글을
읽은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나 시위를 벌였다.

이 바람에 이 음식점에선 예약취소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주인이 PC통신에 사과문을 올리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시위가 한풀 꺾인 지금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힘에 놀라고 있다.

네티즌이 뭉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위에 가담했던 한 네티즌은 "우린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고, 여의도까지
몰려가지 않고도 음식점 주인을 무릎 꿇게 했다"면서 "새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소비자캅스(cops)"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제까지 소비자는 수동적인 제품구매자의 역할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 자신이 구매한 제품의 안전성과 공정성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임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캅스 활동의 중심에는 사이버공간이 있다.

컴퓨터통신이 일반화되면서 사이버 스페이스가 여론을 주도하고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할수 있는 마당으로 등장한 것이다.

국내 8개 소비자단체가 공동운영하는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사이트 "피스넷"
(www.peacenet.or.kr)에는 전자우편에 의한 불만접수 건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사이버공간내의 소비자 감시 대상은 제품이나 기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음란물 유포, 언어폭력, 불법복제 등을 감시하는 정보감시단의 활동도
왕성하다.

특히 10대의 음란물 침투를 막기 위해 학부모들이 만든 정보감시단
(cyberparents.icec.or.kr)과 10대 스스로 불건전 정보를 막기 위해 만든
사이버유스캅 등은 눈에 띄는 사이버캅스 모임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비자캅스 활동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 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종합연구소의 송민택 주임연구원은 "소비자주권을 주장하지 않으면
안전이 위협받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권익을 찾기 위한 적극적
소비자캅스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비자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수용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될 것"
이라며 "소비자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소비자를 최우선 가치에 두는
기업만이 21세기 신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전망했다.

< 최철규 기자 gra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