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원래 시끌벅적한 법이다.

단순히 시끄럽다는 얘기가 아니다.

시끄럽기도 하지만 흥밋거리가 많다는 얘기다.

시골장터는 물건을 사고팔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엔 볼거리가 있고 먹거리와 놀거리가 있다.

20세기말 백화점 수퍼마켓 편의점 등이 번성하면서 한때 시장의 개념이
퇴색하는 듯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로서의 기능만 너무 강조된 탓이다.

그 결과 시끌벅적한 시골장터의 운치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달라지고 있다.

시장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수년새 등장한 쇼핑몰들은 21세기 새 밀레니엄의 시장 모습을
조금이나마 짐작케 한다.

이 쇼핑몰들은 그저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갖가지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갖추고 있다.

서울 강변역 근처에 있는 대형전자유통센터 테크노마트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항상 스무살 안팎의 젊은이들로 북적거린다.

주변에 젊은이들이 갈 만한 곳이 많지 않고 교통편이 그다지 좋지 않은 데도
그렇다.

이들이 그저 물건을 사려고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연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게임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쇼핑몰은 재래시장과 달리 쇼핑하기 편하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시설만 놓고 보면 백화점에도 뒤지지 않는다.

최근 동대문시장에 들어선 패션쇼핑몰 밀리오레와 두산타워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의류는 종래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에서 팔던 옷들이다.

그런데 예전에 재래시장을 외면했던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두 쇼핑몰로
몰려들고 있다.

재래시장과는 달리 쾌적한 쇼핑공간을 갖췄기 때문이다.

테크노마트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 대형 쇼핑몰들이 IMF체제 불황의 한복판
에서 문을 열고도 성공을 거두자 유통업계에는 쇼핑몰 벤치마킹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전국 곳곳에 비슷한 쇼핑몰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분당에는 로데오존, 대구에는 갤러리존, 부산에는 지오플레이스 르네시떼,
청주에는 메가폴리스가 들어섰다.

또 SK건설은 인천에 씨앤씨를 짓고 있고 한국부동산신탁은 분당에
테마폴리스, 생보부동산신탁은 의정부에 미즘, 더컴퍼니는 일산에 더몰을
짓기로 했다.

이 쇼핑몰들의 공통점은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매매공간이 아니라 놀이공간
문화공간 생활공간을 겸하는 복합매장이라는 점이다.

대다수가 테크노마트처럼 영화관, 게임장, 공연장, 금융회사 점포와 대규모
식당가 등을 갖추고 있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2000년대의 매장이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등 시골장터
의 장점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의미에서 쇼핑몰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2000년대초 인터넷쇼핑을 비롯한 무점포거래가 보편화되면 눈에 보이는
시장은 달라져야 한다.

집에서도 간편하게 물건을 살 수 있는 시대에 단지 물건만을 사기 위해
매장을 찾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쇼핑몰을 지어놓고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갖춰놓기만 하면 고객이
몰려오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임대업자가 점포 장사만 하고 떠나버리면 상가는 흉물로 변할 수도
있다.

쇼핑몰이 살려면 적절한 마케팅으로 고객을 끌어모아야 하고 마케팅활동을
펼치려면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크다고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신세계백화점 유통산업연구소의 노은정 과장은 "새 밀레니엄에는 유통업체
마다 매장에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많이 보완할 것"이라면서도 "쇼핑몰만이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유통업계는 지금 쇼핑몰을 주목하고 있다.

시골장터의 운치와 현대식 상가의 편리성을 겸한 매장으로서 충분히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쇼핑몰은 앞으로 유통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