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석경(48)씨가 네번째 장편소설 "내 안의 깊은 계단"(창작과비평사)
을 펴냈다.

이 작품은 90년대의 30대가 어떤 정신적 방황과 사랑을 겪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음악과 고고학 연극에 대한 작가의 뛰어난 식견, 독일 중국에 대한 풍부한
지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특히 경주의 고분군에 관한 이야기가 깊이있게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둥근 고분들을 배경으로 삶과 죽음의 본질을 부각시키는 방식도 독특하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강희와 소정 강주.

첩의 아들인 강희는 연극연출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인물이다.

독일 유학 시절부터 한 여자에게 구속되는 결혼 대신 여러 여자와 돌아가며
동거하는 생활을 선택한다.

그는 결국 사촌의 약혼자인 이진에게 접근해 결혼한다.

강희의 여동생인 소정은 그와 반대되는 유형이다.

첩의 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으려 몸부림치며 중국여행에서 만난
일본인과 순수한 사랑을 체험한다.

강희의 사촌인 강주는 고고학도다.

평범하고 착한 이 시대의 평균적 인물상이다.

그러나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진과 약혼한 상태에서 결혼 직전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혼자 남은 이진은 강주가 죽자 강희와 결혼하지만 강주가 남긴 아이를
키우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우리 시대 30대의 광적인 사랑과 이에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순수한 사랑,첩의 딸이라는 존재의 굴레를 넘어 진정한 구원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모습을 그린다.

그는 "스토리만 좇는 독자라면 고고학 부분이 지루하게 느껴질 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듯 넘어가기
보다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광맥을 찾듯 읽어가면 그 속에 흐르는
삶의 비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가슴속에 남모르는 깊은 계단이 있으며 삶의 껍질을 벗고 그
계단으로 내려가면 본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5년전 박물관에 갔다가 5~6세기경 부장품인 한쌍의 황금 새다리를 보고
"눈부신 혼"을 느꼈다고 얘기했다.

이번 작품은 천오백년간 캄캄한 지하세계에서 비상을 꿈꾸어온 새의
이미지에서 구상되었다고 한다.

소멸과 재생이 되풀이되는 윤회의 기나긴 길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듯
고고학이라는 렌즈로 비춘 것이다.

51년 대구에서 태어난 강씨는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74년 문학사상
제1회 신인상으로 데뷔했다.

86년 중편 "숲속의 방"으로 녹원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을 받았다.

진정한 삶을 찾아 방황하는 젊은이를 그린 이 "숲속의 방"은 "철저하게
제3의 삶을 부각시키면서 진실은 회색지대에 있음을 확인시켜줬고 80년대
소설의 중요한 수확이자 현실인식의 훌륭한 증폭제"라는 극찬을 받았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