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바쿠후(1603~1867)가 일본을 다스리던 때의 일이다.

종이 우산을 만들어 파는 상인이 오사카에 있었다.

어느날 햇볕에 말리기 위해 우산을 널어 놓은 집 앞을 지나던 한 사무라이가
심술로 우산 몇개를 망가뜨렸다.

그러자 상인이 집안에서 달려 나와 항의했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사과는 커녕 길에다 왜 우산을 널어 놓았느냐며 욕을
퍼붓고 돌아갔다.

상인은 참을수 없었다.

칼을 차고 그날밤 사무라이의 집을 찾아가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나는 죽을 각오가 돼있소. 당신에게 나의 칼 솜씨는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오. 허나 개의치 않소. 그대신 의를 중시하는 나의
동료들이 당신을 죽일 것이요"

사무라이는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결국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상인의 집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오사카 상인의 13대손으로 태어나 미쓰비시 은행의 상무를 역임한 소큐
도미코씨가 펴낸 책속의 한 대목이다.

한국에서 개성상인을 최고로 치듯 일본에서는 오사카 상인을 으뜸으로
꼽는다.

상인기질이 뛰어난 일본인들의 오사카 상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상당한
듯 하다.

오사카 상인의 장사철학과 상술, 가르침을 담은 연구자료와 책들은 일본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사카 상인들은 과연 검약과 장사센스, 서비스정신등에서 일본인들에게
적지 않은 일화와 교훈을 남겼다.

물론 미화되고 과장된 표현도 많겠지만 오사카 상인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상품을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사카 상인의 상술중 첫번째 계명은 무엇보다 "장사를 하더라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주값이 오른다고 하자 사재기 바람이 또 한번 극성을 부렸다.

소주회사들에는 주문이 폭주하고 매장마다 소주가 순식간에 동나버렸다.

메이커들은 빈병이 모자라 생산을 할수 없다고 아우성이고 슈퍼와 할인점
에는 고객이 한꺼번에 몰려 소주를 한무더기씩 쇼핑카트에 실어댔다.

시끌벅적했던 사재기는 국세청이 세금을 중과하고 내년부터 병마개 색깔을
바꾸겠다고 서슬퍼런 칼을 빼자 주춤해졌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이번의 사재기 열풍은 일찍부터 그 싹을 차단할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또 상도의와 소비자의식에서 아직은 갈 길이 먼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따지고 보면 소주 파동은 악덕중간상들의 한탕심리와 소비자들의 조급함,
그리고 일부 소주회사들의 은근한 방조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소주값 인상은 정부가 주세율변경 작업에 본격 착수한 상반기부터 기정사실
로 굳어져 왔다.

소주세율을 35%에서 80%로 올리겠다는 정부안이 발표된 9월초부터는 사재기
가 시작됐다고 봐도 틀림없다.

넉달후면 소비자값이 병당 30%(약 2백원)이상 오르게 돼있는 소주는 중간
상들에게 단숨에 한몫을 챙길수 있는 노다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재기는 예견돼 있었으며 소지과세등의 대책을 초기에 내놓았으면
혼란은 상당히 줄었을 것이 분명하다.

한탕을 노린 중간상들에게 가장 큰 비난이 쏟아져야 하지만 소비자들도
책임을 면키는 어렵다.

가격 인상시기가 멀었는데도 우르르 몰려가 법석을 떤 행동은 현명한
소비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판매부진에 허덕이던 일부 소주회사들의 경우는 중간상을 설득하고 출고를
조절하기 보다 사재기의 반사이익을 즐겼을 가능성이 크다.

사재기는 사재기를 한 장본인에게 일확천금을 안겨준다.

그러나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왜곡시키고 가격질서를 혼란시키는등 반사회적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나아가 판매업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증폭시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신뢰마저 갉아먹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공동체적 연대가 무너진 사회를
저신뢰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신뢰도가 높은 집단에서는 한 무리의 이익이 다른 무리의 손실로
귀착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단기에 많은 이윤을 올리기 위해
고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태인들은 상인이 해서 안될 세가지 금기로 과대선전, 저울눈금 속이기와
사재기를 꼽았다.

중국상인들은 "상품을 팔때 소문도 함께 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새천년, 신세기의 날이 75일 남았다.

새천년을 앞두고 우리 주변에서는 범국가적 행사와 이벤트가 다채롭게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요란한 행사와 선진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새천년이 왔다고 문화가 갑자기 일류수준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소주사재기에서 보듯 무분별한 한탕주의가 자취를 감추지 않는한 선진소비
문화와 신뢰사회는 21세기에도 요원한 꿈일수 밖에 없다.

< yangs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