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의료보험 통합 문제로 꽤나 시끌시끌했던 한 주였다.

정부와 여당이 내년 초로 예정됐던 의보통합을 6개월 연기하기로 결정하자
예정대로 실시해야한다는 측과 이번 기회에 아예 전면 보류해야된다는 측이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상황은 의려보험제도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과 정책의 전환없이는
갈수록 더 자주 더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의료보험재정이 1~2년 내로 바닥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역과 직장 의보의 통합이 거론된 것은 현행제도를 유지할 경우 의료보험
재정의 고갈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통합의 취지는 적자에 허덕이는 지역의보를 기금사정이 다소 좋은 직장의보
에 덧붙여 위기를 넘겨보자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지역별로 나뉘어 있던 지역의보를 하나로 통합한 이후 의보료
월평균 미수액은 종전의 8.6배로 늘었다.

여기다 지역의보와의 통합 거부 운동에 서명한 봉급생활자도 500만명을
넘었다.

통합이 오히려 재정파탄을 앞당길 수 도 있는 상황이 됐다.

길게 볼 때 문제의 본질은 사실 통합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현행 3대 의보는 재정적으로 파탄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의료비로 지출하는 액수는 현재 국민총생산의 6%정도다.

하지만 이는 매년 20%씩 급증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10년 후애는 소득 중 의료비 비중이 40%에 육박한다는
계산이다.

어쩌면 10년이 안 걸릴 수도 있다.

고령인구가 급증하고 비싼 약과 고가 치료기술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비, 국민연금, 각종 세금 등으로 소득의 60~80%를 내야 한다고 가정할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론적으로는 의보재정의 파탄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의보재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은 헤픈 소비라고 할 수 있다.

보험에서 많은 돈을 타쓰다 보니, 즉 내 돈 아닌 남의 돈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소비현상이 나타난다.

아꼈다가 나중에 더 긴급할때 쓰려 하기보다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당장 쓰고 보자는게 어찌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국가나 보험회사 또는 보험료를 일부 부담하는 기업들은 각종 소비 억제책을
내놓는다.

포괄수가제며 총액한도제를 도입하고, 비싼 약이나 고가 치료는 급여대상에
서 제외하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크게 세 가지 보건의료제도가 존재한다.

하나는 영연방국가들이 채택한 국영의료제다.

다른 하나는 미국식 민간의보제다.

영국식은 거의 무료지만 품질이 떨어지고 환자들이 기다림에 지친다.

미국식은 고급이고 신속하지만 몹시 비싸다.

한국 정부는 지금 영국식으로 가려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싱가포르식이 있다.

싱가포르 국민은 소득의 6%를 의료저축예금에 적립한다.

이 돈은 사유재산이다.

봉급생활을 하건, 자영생활을 하건, 또는 실업자가 되건 항상 자기 것이다.

이 예금엔 세금이 붙지 않는다.

이민을 갈경우 한꺼번에 찾아 쓸 수 있다.

상속도 된다.

다만 의료비 외에 다른 용도로는 쓸 수 없다.

싱가포르제도의 적립률은 한평생 의료비가 대부분 사람의 경우 근로기간
총소득의 6%를 넘지 않는다는 통계에 근거한 것이다.

싱가포르 국민은 자질구레한 소액 의료비는 이것으로 지불한다.

거액 의료비에 대해서는 별도 보험으로 충당한다.

만약의 사태에 한해 보험금을 타 쓰기 때문에 보험료는 당연히 매우
저렴하다.

적립금은 평생토록 자기 것이기 때문에 건강한 젊은 시절 갹출금을 많이
내고도 정작 의료비가 많이 드는 노후에 의보재정이 바닥났다고 해서 치료를
거부당하거나 질 낮은 서비스를 받는 사례는 있을 수 없다.

자기 돈을 자기가 쓰기 때문에 괜한 낭비도 없다.

싱가포르처럼 국민총생산의 6%만 쓰면 모든 국민이 만족할 수 있지만
미국인은 16%를 쓰면서도 불만이 많다.

그래서 공화당 일각에선 미국의 보건의료제도를 싱가포르 식으로 바꾸려고
노력중이다.

지난 93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일단 무산됐지만 차기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한다면 미국 의보제가 싱가포르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 전문위원 shind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