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대안으로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를
제시한다.

특히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로는 대만의 중소기업 중심경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야졌다.

그러나 과연 한국이 대만을 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반론도 많다.

얼마전 한국주재 대만대표부 대사가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대만 내부에서는 오히려 한국처럼 거대 장치산업을 이끌 대기업이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 하는 소리도 있다.

한편 스웨덴이나 네델란드 같은 작은 나라들에서도 대기업 조직이 발달
한다.

여기에는 유럽시장이 비교적 동질적이라는 요인도 있지만 사회적인 배경도
작용한다.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이들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노동조합의 힘이 세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노동조합 사이에서 이뤄진다.

중소기업은 소유주에게만 이익이 돌아가지만 대기업은 문화를 만들어내고
키워 나간다는 국민의 의식이 대기업 체제를 발달시킨 이유다.

결국 "경제가 어떤 시스템을 취하느냐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작용한다"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이사)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윤 이사는 특히 "미국과 같은 거대한 내수시장이 발달된 나라는 조그만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해도 얼마든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며 시장규모를 경제시스템 형성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내수를 수출로
보충해야 하고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자본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기업이냐 아니냐는 이처럼 다양한 환경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도 재벌과 중소기업이 대립관계로 비춰져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재벌과 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재벌은 문어발식 경영으로 중소기업이 자랄 토양을 빼앗고 건전한 기업문화
를 정착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정부도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발달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경쟁력
제고보다는 보호에만 초점을 둔 중소기업정책과 과도한 규제 때문"(이규억
아주대학교 교수)이라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 박민하 기자 hahah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