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존의 조건은 무엇인가.

또 성장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박철순 서울대교수.경영학)이다.

21세기를 불과 두달 남짓 남겨둔 지금 한국 기업들 앞에 던져진 과제도
다르지 않다.

바로 "무엇으로(what) 어떻게(how)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는 곧 미래의 전략사업을 찾기 위한 노력과도 통한다.

현대그룹의 미래 전략사업은 자동차와 전자다.

여기에 환경과 에너지분야를 새로 모색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현재의 강점인 반도체와 금융 외에 생명공학분야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중이다.

LG는 정보통신을 중심으로 관련 유망산업을 찾고 있다.

대기업 그룹들은 각각 "21세기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놓고 고민중인
셈이다.

과거 한국기업들의 경쟁력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서 출발했다.

독자적인 기술개발능력, 부품의 안정공급능력, 소품종 대량생산능력, 거대
판매망 구축능력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요소들을 잘 조직하면 1등 기업이었고,그렇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떨어졌다.

그렇다면 21세기의 경쟁우위도 이같은 요소에 따라 결정될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경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때문이다.

"디지털화의 진전, 산업간 융합, 지식산업시대의 도래 등이 변화의 핵심
키워드"(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이사)다.

"21세기"가 함축하는 뜻은 종전의 틀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기업의 경영환경 측면에선 특히 그렇다.

환경변화가 갖는 폭발성 때문이다.

국내기업이 상대적으로 강한 제조기술 분야를 보자.

"과거 국내기업의 경쟁력은 대부분 모방경쟁력"(유승민 KDI 선임연구위원)
이었다.

따라서 관건은 생산의 전과정을 보다 잘 "관리"해서 보다 균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기업의 독자적 전략과 청사진을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자원의 낭비였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변화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주변환경을 예측할 수 없게 됐고 따라서 모방할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

"대기업그룹들이 안고 있는 딜레마는 나아가야 할 좌표를 정확히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현대경제연구원 강용중 연구위원)이다.

그러나 "21세기형" 경쟁력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청사진 역시 과거의 경쟁력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때 가능한
법이다.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은 인터넷 "포탈사업"에 진출했다.

언뜻 생각하면 전혀 관련없는 분야다.

미래산업은 스스로의 핵심역량을 소프트웨어 인력, 창의적 문화, CEO
(최고경영자)의 리더십 등으로 꼽고 있다.

이는 반도체장비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동력이지만 동시에 인터넷사업
에서도 필요한 분야다.

"핵심경쟁력을 강화하고 발전시킨 관련다각화"(정문술 미래산업사장)란
설명이다.

산업화 단계에서 한국기업을 세계 상위수준으로 끌어올린 경쟁력의 원천엔
"재벌 시스템"이 있었다.

잘 훈련된 CEO, 정부와의 효율적인 협조, 위험감수형 금융시스템 등은
재벌체제가 가졌던 고유한 경쟁력들이다.

문제는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을 어떤 그릇으로 담아낼 것이냐 하는 점이다.

기업이 환경적응업이란 점을 감안하면 재벌 시스템이 보다 개방형 체제로
이행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미래의 환경에선 개방형 시스템이 훨씬 경쟁적이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하와이의 생태계는 이질적인 종의 출현에 취약하지만, 개방형인
코스타리카의 생태계는 외부의 침탈에 강한 것과 같은 이치다.

전략적 제휴, 협력업체 지원, 분사(spin off)같은 전략이 중요시되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초래한 유동성 위기에선
어느 정도 벗어났으나 새로운 성장원천을 찾는 단계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재무구조의 개선작업에만 매달려 정작 중요한 "미래의 먹거리"를
찾는 노력은 다소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나타나고 결국엔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이사는 "기업 성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재정립해
장기적으로 이를 발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기업이 미래지향적일
때라야만 국가에 미래가 있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9일자 ).